꽤 오래된 다큐멘터리 Man vs. Wild를 아시나요? 베어그릴스라는 생존 전문가가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사막, 극지방, 밀림 등 극한환경에서 나이프 하나로 버티는 모습이 꽤 재미있습니다. 사막에서는 먹을 것을 어떻게 구하는지 (뱀이 지나가면 도시락이라고 합니다), 아마존 밀림에서는 어떻게 먹을 것을 구하는지 (피라냐가 지나가도 도시락이라고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마을이 있고 물을 구할 수 있는지를 직접 수행하면서 알려줍니다. 그중 한 편이 무인도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무인도까지 헬리콥터로 간 후 바다로 떨어져서 헤엄쳐서 갑나다. 열심히 수영해서 해안에 닿은 베어그릴스 아저씨가 설명합니다. 무인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높은 곳을 찾아서 올라가는 것이라고요. 힘들어 죽을것 같은 표정으로 낭떠러지를 막 올라갑니다. 끙끙대며 올라가서는 주변을 둘러봅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살펴보고 다음 행동을 정합니다. 이렇게 해야 여기가 진짜 무인도인지, 모래사장은 어디인지, 주변에 섬이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으니 가장 먼저 하라고 알려줍니다. 갑자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지 했는데, 생각이 났습니다. 묘하게 비슷하더라구요. 제가 요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요. 우리는 매일 열심히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다들 비슷할겁니다. 저는 월요일 출근이 죽을것 같다가도 순식간에 금요일이 오는 마법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며 그날 그날을 조망합니다. 오늘 점심때 무슨 미팅을 하고 저녁때는 무슨 일을 하고 따위를 생각하는 거죠. 매일 매일의 일정을 생각 안하는 분은 별로 없으실겁니다. 일주일이나 한달도 그럭저럭 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는 보고서를 끝내야지, 이달 말까지는 장부 정리를 끝내야지 등입니다. 해야 할 일과 아직 안한 일이 비교적 명확히 보이니까요. 그럼 일년은요? 아마도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다들 각오를 다지시겠죠. 내년에는 이런걸 목표로 해야지 하면서 열심히 모은 프리퀀시로 교환한 스벅 다이어리를 꺼냅니다. 새 다이어리를 개봉하는 일은 사뭇 성스러운 의식과 같습니다. 내년도 달력을 보며 휴일이 왜 이렇게 없는지 한숨을 쉬고, 새해 목표를 첫 페이지에 또박또박 적어내리는 느낌은 참 남다르죠. 저만 그런건 아닐겁니다. 다들 그렇게 매일, 매년을 보내고 있죠. 그런데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건 하시나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베어그릴스의 무인도 탐험을 보다가 강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이나 무인도나 뭐 그리 다를까요. 사실 전체를 조망하고 계획을 짜는 것은 인생에서도 해야 할 일일 겁니다. 무인도에 떨어졌을 때처럼 삶에 대해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조망하는 것일텐데, 저는 그걸 잘 못했습니다. 산에 올라가는게 힘들다는 것과 같은 이유였습니다. 힘들더라구요.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요. 당장 마주칠 내일을 생각하는 것도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인생 전체를 조망하겠습니까? 일단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 해도 2가지 때문에 더 힘들었습니다. (1)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고, (2) 어떤 장비나 능력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는데…뭘 조망을 하나 싶은거죠. 생각외로 참 어려운 것이 있는 그대로의 날것의 나를 보고 인정하는 겁니다. ‘나이를 이렇게 먹었는데 해놓은게 없네? 와~이러고도 잠이 오나?’ 이런 느낌!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딘지 보는 것과, 조난당한 무인도에서 전체를 보기 위해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 꽤 비슷하다는 생각이 그래서 들었습니다. 베어그릴스은 끙끙대며 섬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옆 섬에 먹을 것이 많다고 판단하고 이동하더군요. 수심이 얕은 곳에는 상어가 돌아다녔는데, 겁먹은 카메라맨과 음향기사와 함께 건너갑니다. 생존은 위험과 이득을 계산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말하면서요. 베어그릴스는 시리즈 초기에는 나이프 하나만 들고 다니며 살아 남았는데, 요즘은 나무를 비벼서 불 피우는게 너무 힘들다며 부싯돌도 갖고 다닌다고 합니다. 제가 갖고 있는 나이프와 부싯돌은 뭔지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는데 아직도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어디로 가면 좋을지, 어떤 장비를 챙길지, 늘 고민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늘 헤매고 있으면서 독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다 같이 고민하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요?(20년째 고민중) 다들 좋은 장비 챙겨서 살아남으시길 바래봅니다.

무인도에 가면 높은 곳을 찾으라고 합니다.

Brunch Story

무인도에 가면 높은 곳을 찾으라고 합니다.

2022년 1월 2일 오후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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