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면 자꾸만 그 원인을 따지고 책임을 묻는 버릇이 있다. 국이 짜면 ‘국이 짜구나’라고 하기 보다는 ‘소금을 너무 많이 쳤나봐’라고 말하고, 본인 눈이 작으면 ‘내 눈이 작구나’라고 하지 않고 ‘다 아빠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마치 원인찾기 경연장같다.
원인은 무한하다. 당구공을 구르게 한 건 큐대이지만, 팔근육을 앞뒤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큐대가 공을 칠 수 없었을 것이다. 팔은 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그럼 대뇌피질을 움직이게 한 건 뭘까? ‘쌀 한 톨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얘기도 결국 현상과 연결된 수많은 원인과 조건을 말하는 거겠지.
원인 찾기는 보통 개인과 환경 중 하나에 몰아주기로 마무리된다. 폭식의 원인은 운동은 안 하고 절제력 없이 음식을 탐하는 개인 때문일까, 식품산업의 로비나 식욕을 자극하는 광고 때문일까?
그러나 어떤 한두 가지 원인만이 어떤 현상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폭식의 위험성을 아는 사람이 적다거나, 그에 대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도 원인의 일부가 될 것이다. 다른 원인들이 있고, 서로 중첩되기도 하고, 때로는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된다.
게다가 우리는 책임을 물을 때 일정한 편향성을 갖는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라면 남북회담은 대통령 덕분이지만, LH 사태는 사회 구조 탓이라고 말한다. 반대파라면 좋은 일은 누가 대통령을 하더라도 벌어질 거였고, 나쁜 일은 모두 문재인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편향적이다. 결국 이 편향성을 스스로 알아채느냐, 그리고 다른 원인에도 눈길을 돌릴 수 있는 용기가 있느냐가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