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몇 분들께서 1:1 메시지를 통해 질문사항을 보내주시곤 합니다. 그중 같이 한번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싶은 내용들을 추려서 Q&A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몇 편의 시리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제 생각을 성심성의껏 적어봅니다.
01. 이 질문을 받고 '와 정말 좋은 질문이다'라는 감탄을 했습니다. 저도 과거에 정말 자주 했던 고민이자 지금도 잊을만하면 가끔씩 스스로를 파고드는 물음 중 하나거든요.
특히 질문 자체가 '제가 내는 아이디어에 자신이 없어요'라든가 '기획하는 일 자체가 어렵고 무한한 책임감이 느껴져요'같은 막연한 고민이 아닌, '적어도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차근차근 발전시켜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 확신을 심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구체적인 질문이기 때문이죠.
이미 질문자는 '자기 확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겁니다.
02.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끔은 '자기 확신'이 굳이 필요하냐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즉, 어차피 결정은 내가 아닌 윗사람(?)이 해주는 거고 나는 그 의사결정에 따라서 일을 진행하면 되는 거니 기획자 스스로 확신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더불어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 협업자나 동료가 있으니 그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다 보면 '확신'이라는 것은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죠.
03. 사실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자기 확신이 넘치는 데도 이를 앞으로 끌고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게 어쩌면 기획자들에게 더 큰 고민이 될지도 모르죠.
다만 제게 발언권을 주신다면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아무리 작은 기획물이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그 대상에 확신을 가지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04. 기획을 하다 보면 방향이 타인을 향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당연히 기획자는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needs나 wants를 파악해 이를 중요한 포인트로 뽑아내고 디벨롭 해야 하는 사람이니 기본적인 디렉션이 내가 아닌 남에게 맞춰져 있는 건 필연 적이라고 봐야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들이 해달라고 했으니 해주는 겁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남들도 하고 있으니 저희도 해야 할 것 같네요'라는 마인드를 가지는 것은 기획자 본인을 매우 힘들게 만드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05. 그래서 저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해 봅니다.
하나는 자기 확신을 기획의 수단보다는 목적에 두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기획에는 목표가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있습니다. 보통은 수단만 기획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사실 목표 자체를 기획하는 것이죠.
06. 때문에 설령 수단 자체에 확신이 조금 적더라도 내가(혹은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확신이 있다면 계속 그 방향으로 전진해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더불어 지금 내 손에 들린 A라는 수단은 조금 자신이 없어도, B,C,D...라는 수단을 쥐었을 땐 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르거든요. 그러니 매번 수단 자체를 가지고 일희일비하기보단 내가 기획의 목표에 얼라인을 맞추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07. 다른 하나는 '나에게 특정한 액션을 취하도록 만든 것', '내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것'에 대한 경험을 소중히 기억해 두는 것입니다. 타인의 성공 경험을 통해서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보다'라는 확신을 가져야 할 때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기획을 하는 사람이 먼저 겪어보고 확신한 자신의 경험을 타인을 위해 풀어낼 줄 아는 능력이거든요.
그러니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를 건드린 포인트가 있다면 그게 어떤 이유에서 나를 움직였는지를 생각해 본 다음 거기서부터 생각을 확장시켜가는 것이 꽤 큰 소득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합니다.
08. '그러다가 기획물이 개취(?)로 흐르면 어떡하나요?'라는 반문이 있을 걸로 압니다. 하지만 세상에 테스트와 근거를 마련해 기획해야 하는 영역이 있나 하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취향을 설계해 줘야 하는 기획도 있습니다. 전자가 자연스런 단계를 밟으며 확신을 가지게 된다면, 후자는 '일단 믿고 간다'는 식의 확신을 가져야 하는 거죠.
09. 여기서 중요한 건 왜 그 일을 여러분에게 맡겼는지 생각해 보는 겁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 설사 개인의 취향으로 흐를 수 있는 문제더라도 여러분이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을 낼 거라고 생각해서 그 일을 맡긴 것이니까요. 가끔은 나를 먼저 움직인 그 포인트를 믿고 시작해 보는 것도 그리 리스크가 큰 도전은 아닙니다.
10. 그러니 여러분 눈앞에 있는 일에 확신이 떨어질 때는 두 가지 질문을 한 번 던져보세요. '지금 하는 일이 우리의 목표에 잘 들어맞는 일인가' 그리고 '지금 이 기획의 과정에는 내가 먼저 경험하고 확신한 요소가 하나라도 제대로 녹아들어 있는가'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