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해지라'는 거짓말을 믿지 말아요

모든 담론에는 생애주기(lifecycle)가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특히 ‘노력’과 ‘성공이라는 단어가 공기를 채우는 것 같았죠.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넌 왜 노력을 안하니? 너는 열심히 사는 애구나?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살수는 없을 것 같아. 지금은 노이즈가 많아지기도 했고 제가 10, 20대가 접하는 담론을 생활 속에서 만나고 있지는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놀라게 되는데요, ‘독해져라’는 원칙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수능강사를 포함해, ‘객관식 시험’을 가르치는 강사 부류입니다. 토익, 수능, 사회교과, 수학, 공무원 등, 유난히 독하게 살아야 한다고 끝없는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폼을 잡는 사람들은 보통 이런 종류의 강사들이죠. 둘째는 한 5~10년쯤 지난 자기계발 영상입니다.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제 기억으로는 보통 X세대 이상의 자기계발 연사들이 거리낌없이 ‘독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성공, 성장, 자기계발 담론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일과 커리어에 대한 담론에서도 ‘독함’이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는 훨씬 줄어든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인데요, 오늘은 ‘독해져라’는 패러다임이 왜 끝났고, 이 종결이 왜 좋은 일인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첫째, 독함을 강조하는 자들을 잘 살펴볼까요. 인생의 몇년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 오롯이 갈아넣기를 요구하는 자들은, 제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도, 멋져보이지도 않습니다. 학생들의 꿈을 먹는 약탈적인 비즈니스 모델에서 누린 성공이 마치 자신의 선한 카르마인냥 ‘나는 독해서 성공했다’는 성장 신화를 계속해서 재생산합니다. 독함을 강조하는 자들은, 늙어보입니다. 몇년 갈아넣다보니 확 늙어버린 것인지, 딱해보일 정도로 확 가신 분들이 좀 계시더군요. 건강을 버리고 추상적인 미래만을 위해 몸을 오롯이 바친 인간의 말로는, 결국 급격한 노화일 뿐이지 않을까요. 더 나은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독함은 추상적입니다. 어떤 이유로 독하게 갈아넣어서 성공을 추구해야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강사들도 잘 설명하지 못해서 듣다보면 얘기가 추상의 끝을 달리거나 결국 자기 얘기를 하거나 위대한 인물들도 갈아넣었다고 강조할 뿐입니다. 절박함, 분노, 막막함 등의 감정을 앞으로 나아가는데 사용한다는 원칙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과 목표를 자신과 연결짓는 작업을 스킵하고 무한경쟁의 맥락에서 일단 먼저 치고 나가기 위해 삶을 오롯이 바치라고 하는 지적 게으름과 허영에 공감하기 어려울 뿐이죠. 셋째, 독함은 허무합니다. 객관적인 목표(시험 합격, 수능 점수 등)는 명확한데 도대체 왜 그걸 얻어야 하는지, 그걸 얻으면 지금 여기의 내가 왜 행복해지거나 성장하는지 알 수 없이 일단 빡세게 갈아넣다보면 분노가 쌓이게 됩니다. 달성을 한 자는 오만해지고, 목표를 이루지 못한자는 분노, 억울함, 열패감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한국의 공정담론이라는 것이 사실 어떤 사상적인 기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독하게 시험봐서 붙은자와 붙지 못한자들이 모두가 같은 기준으로 시험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담론’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객관주의 교육의 처절한 실패 지점이겠죠. 스타트업계에는 독함을 닮은 ‘허슬(hustle)’이란 담론이 있습니다. 여러모로 비슷하죠. 그래도 잘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비전과 미션이 명확하기에 팀원은 시험 합격이나 특정 대학 입학이 약속하는 추상적인 미래보다는 좀 더 나은, 자신이 선택한 가치와 성장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보상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회사가 아무리 성장해도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작은 지분이나 스톡옵션(공동창업자가 아니라면 사실상 큰 의미가 없죠) 정도밖에 안될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눈에 띄는 ‘성장’ 담론은 제가 보기에는 ‘독함’ 담론보다는 훨씬 건강합니다. 자신이 공감하는 비전, 목적, 미션을 골라서 팀과 함께 할 수 있어요. 직무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죠. 더 성장한 사람들과 만나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플랫폼이나 커뮤니티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1년만 독하게 살아라!’라고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교육 문화보다는 백배 나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 삶의 특정 시점에 ‘독함’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구조라는 점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험에 붙거나 전문훈련을 받아야 하는 몇개 분야에서는 원하는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몇년은 버렸다 생각하고 갈아 넣어야 하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함’보다 ‘성장’을 선택하면 어떨까 합니다. 배움의 기회를 수련으로 받아들이고 매일 나아질 수 있다는 성장 마인드셋을 탑재하며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나를 성장하게 할 것이다’라고 강하게 믿는 것이죠. 동시에 건강과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갈아넣다 건강을 잃으면, 정말 안됩니다. 탈모가 시작되면, 일단 다 그만둬야돼요. 내가 이 짓거리를 누구를 위해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면, 다시 돌아와 비전, 목적, 목표를 리뷰할 수 있는 자신만의 콘텐츠, 멘토, 커뮤니티도 마련해두는 것이 좋을 겁니다. 독한자에게는, 성공하더라도 독기가 남습니다. 독기는 오만함와 열패감이란 이름으로 주위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해요. 갈아넣지 않은자를 무시하고, 실패한 자를 내려다보며, 세상을 객관주의로만 바라보는 바보가 되는 거죠. 세상은 시험이 아닌데도 말이에요. 그러니 ‘독해지라’는 거짓말을 믿어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만 그 여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이 길에서 성장할 수 있을지 판단하고, 자신을 위해 결정하며, 그 모든 과정에서 자신의 몸과 체력을 지켜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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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2일 오전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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