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강박에 시달리는 당신에게

‘성장과 비전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던데… 난 그렇게 큰 욕심이 있거나 대단한 사람은 아니야. 내가 뭔가 잘못된 걸까? 나도 비전이 있고 현실왜곡장을 일으킬 수 있으면 행복할까?’ 모든 메시지는 진리입니다. 발신자는 진리라고 생각했기에 시간을 들여 메시지를 연성해서 발신했겠죠. 모든 메시지는 개소리입니다. 수신자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의 상황과 맞지 않는 메시지는 노이즈일 뿐,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붓다가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한 말은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설파하는 진리를 너의 삶에 직접 적용해보고 의미가 있을 경우에만 계속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에 일본도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들이대서, 아퍼리즘(아플 정도로 날카로운 아포리즘) 형식의 진리를 담은 글을 쓰려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핵심에 닿기 위해 단정적인 문체로 쓰기 때문에, 아마 오해가 생길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비전을 가져야 해?’ ‘나는 날카로운 하나의 욕망이 아니라,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뭐가 틀린 건가?’ ‘나는 저렇게까지 살고 싶지는 않은데, 내가 뭐가 문제일까?’ ‘성장이 지상최대의 가치인 것 같이 부풀리는 것 같은데, 나는 사실 지금 삶도 꽤 행복하거든. 뭐가 문제라는 거지?’ 공감합니다. 다 맞는 얘기에요. 성장이 아닌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폭발적인 기세가 아니라 치유가 필요한 상황도 있습니다. 미래로부터 온 삶이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는 삶도 있습니다. 틀린 것은 없습니다.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개소리보다 자신의 진리가 옳습니다. 붓다가 옳아요. 그러니 반쯤 미친 사람들이 비전, 욕망, 성장, 연금술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공감되지 않고, 많이 불편하며, 나를 작아보이게 한다면 자신의 결과 맞지 않는 겁니다. 당장 언팔해야겠죠. 하지만 삶이라는 순례길은 항상 계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속되는 행복이란 없습니다. 행복은 정의상 지금 현재의 긍정적인 감정의 칵테일 같은 것이기 때문이죠. 삶은 고통의 수프 속에 가끔씩 발견할 수 있는 행복이라는 건더기와도 같습니다. 행복만 잡아둘 수는 없다면, 고통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겠죠. 붓다가 그랬던 것처럼. 변화를 듣지 않는 자에게 삶은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길이 열리고 기회가 찾아옵니다. 고난과 역경이라는 방식으로 쇠망치를 내려치기도 합니다. 깨어나라는 삶의 명령이죠. 수년 수십년 전에 들었던 어떤 메시지가 마음 속에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아… 그 때 그 얘기가 이런 의미였구나. 아… 그 때 내가 그 이야기, 그 사람, 그 경험을 해야 했던 이유는 이것이였구나. 성장 강박에 시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억지로 성장한 모든 것은 거품이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비전은 억지로 만들수도 없고, 있어보이는 척 한다고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단지 거울 속 그 인물에게 한번쯤 질문을 던져볼 일이죠. 넌 어디까지 갈 수 있니? 넌 어디까지 가기를 원하니? 너의 욕망은 무엇이니? 틀린 욕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원하는데는 이유가 있겠죠. 다만 욕망을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진리만 깨달으면 됩니다. 잘 고민해보면, 마치 내가 원해야 하는 것 같은 그것들을 다 욕망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만 원하는 삶이야 말로 나다운 삶입니다. 남들이 원해서 나도 원하는 줄 알고 갈아넣었다가 후회하는 삶, 정말 많잖아요? 당신은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원하고 있나요? 대답이 ‘예’라면, 비전이든 뭣이든 거창한 것을 얘기하는 사람 얘기는 무시해도 됩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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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4일 오후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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