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게 느껴졌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가 가장 심했던 것 같다. 다양하고 이상한 사람들 틈 속에서 알아서 잘 살아남으라고 던져진 기분이었다. 상황이 더 나빴던 것은 대학 입학도 하기 전에 사기꾼들을 만났던 탓이 크다. 학교에서 하는 설문조사라고 해서 의심 없이 남긴 개인정보가 엉뚱한 종교 단체에 흘러가 있었다. 학교에서 하는 설문이라는 말은 거짓이었고, 선배라는 사람들이 포교를 위해 같은 학교 신입생을 낚는 형태의 사기였다. 그렇게 뭣 모르는 신입생들의 대학 첫 인간관계를 종교단체에서 선점해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아무튼 잔뜩 기대했던 대학 생활 인간관계의 첫 단추를 사기로 시작한 필자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사람들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과 그래도 여전히 혼자가 되기는 싫다는 마음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생각이 많아져서 식은땀이 나고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몰라 눈 앞이 하얘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깨달음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창하겠으나, 인간관계가 나한테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모두에게 다 조금씩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겉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여도 속으로는 다들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면 다들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렇게 카리스마 있는 사람도, 차가워 보이는 사람도, 나를 평가하려고 벼르고 있는 사람도 다 관계의 기쁨과 슬픔을 겪으며 살아왔음을, 상처받지 않으려 나름의 철갑을 두르고 있는 것임을 알고 나니 사람들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나만 어색한 순간을 질색하는 것이 아니며, 저 사람도 사실 나 만큼이나 떨고 있음을 바라보면서 나름의 연민과 동지애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실수하는만큼 저 사람도 똑같이 실수할테고, 내가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저 사람도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관계가 잘못되는 것이 꼭 누군가의 잘못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갈팡질팡하고 두려움이 가득한 미련한 존재라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위안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아무리 애를 써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불가능할테니까(내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아보자고 생각하면서 두려움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깨달음을 다른 말로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한다. 나의 부족함과 어려움이 오직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임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어려움 속에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일수록 주변으로 눈을 돌려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도 관심을 갖는 것을 말한다.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깨달음이 실제로 사회적 상황에서의 두려움을 줄여준다고 한다. 볼더콜로라도대(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연구팀에 의하면, 사회공포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사회적인 상황에서 어색함과 두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더니 사회공포증이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것은 크게 2가지 메시지를 준다. (1)하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2)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도 생각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친밀감을 준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다. 평소 어렵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때로는 작은 용기가 인생을 바꾸기도 하니까.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사람은 거기서 거기"...나에게 어려운 건 남들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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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사람은 거기서 거기"...나에게 어려운 건 남들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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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5일 오전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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