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다니던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해 두 달 전쯤에 그만뒀다고 했다. 해마다 한 차례씩 직원들 해외여행을 보내주던 탄탄한 중견기업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갑작스레 몰락했는지 마음이 아팠다.


그 회사가 어떻게 어려워졌는지 자초지종 얘기를 듣다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의 회사는 CEO와 직원이 서로를 바보로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돌아간 듯 보였다. 그 결과, 조직 전체가 바보가 되고 말았다.


시작은 CEO가 직원들에게 심은 두려움이었다. 그 회사의 CEO는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4가지 리더 유형 중에 ‘외지(畏之)’ 스타일이었다. 직원들이 겁을 내는 리더라는 뜻이다. 그 CEO는 자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직원은 가차 없이 모욕하고 수치심을 주었다. 그의 뜻에 어긋난다 싶은 직원은 어김없이 승진과 보상에서 밀려났다.


인간의 두뇌는 두려움을 느끼면 항상 일신의 안위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우선 CEO 앞에서는 그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게 된다. 불편한 진실, 다시 말해 회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위기의 징조가 보이는지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듣기 좋은 말만 하게 된다.


그 결과, 지인이 다녔던 회사의 CEO는 점점 바보가 되어 갔다. 회사가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 적어도 같은 위기에 처한 경쟁사보다는 사정이 낫다는 착각에서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 말을 듣는 도중에 문득 잭 웰치의 말이 떠올랐다. 웰치는 “회사 사정을 가장 모르는 사람이 CEO다. 나 역시 그랬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웰치 같은 위대한 CEO도 그런 상황인데, 직원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그들의 입을 막은 CEO는 어떤 상황이겠는가? 회사 상황에 점점 ‘문외한’이 되어갈 뿐이다.


그래도 세상이 옛날과 똑같이 굴러간다면 괜찮다. 지인 회사의 CEO 역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라고 했다. 만약 경영 환경이 과거와 똑같았더라면 그의 과거 성공을 이끌었던 ‘성공 방정식’ 그대로 조직을 이끌어도 회사는 위기에 빠지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불확실성이 높을 때는 다르다. CEO의 옛 경험과 지혜가 통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CEO는 이런 사실을 모른다. 그의 옆에는 불편한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지인의 CEO는 심각한 ‘정보의 진공 상태’에 빠진 지 오래라고 했다.


더이상 그의 지시는 적절하지 않다.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만든 ‘거품’에 갇힌 채 오랫동안 살아왔던 CEO는 현재의 고객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CEO는 이 사실을 모른다. 그의 주변에는 진실을 말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의 말단 사원을 비롯해 모두가 아는 진실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몰랐다.


이런 환경에서 직원들은 일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데만 집중하게 된다. 예를 들어 CEO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옛날 기준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데 돈과 사람을 쓴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일’ 하는 게 아니다. 그래봤자 요즘 기준의 진짜 시장 점유율은 높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오히려 자원을 낭비하는 짓이다. 하지만 오너에게 ‘열심히 일을 해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데에는 충분한 짓이다. 결국 해당 직원은 오너의 인정을 받는다. 승진과 보너스를 얻는다.


이때부터 진실을 말하는 건 더더욱 어렵게 된다. 시장점유율 높였다는 게 ‘허위’라는 사실을 CEO가 알기라도 하면, CEO의 불호령이 떨어질 게 분명해서였다. 이제 진실을 말하는 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비슷해졌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살 수 있으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방울을 달려는 쥐부터 고양이에게 잡아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CEO에게 진실을 말하는 직원부터 “왜 이렇게 되도록 보고하지 않은 거냐? 왜 이제야 말하는 거냐?”는 추궁을 받을 게 분명하다. 이어 “누구 책임이냐?”는 희생양 색출 작업이 벌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최선의 선택은 그들 역시 바보가 되는 것이다. CEO처럼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은 점점 무능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를 해결할 진짜 해결책을 찾지 않고 허위에 갇혀 사는데 어떻게 능력과 스킬이 향상시킬 수 있겠는가?


CEO와 그를 둘러싼 직원들이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회사에서 내부 역량이 제대로 소화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소화불량에 걸린 조직일수록, 일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게 승진에는 더욱 유리하다.


그러나 현장에서 직접 고객을 만나는 직원들은 진실을 안다. 고객이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점점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지인 회사의 실무자들은 역량과 에너지가 헛된 곳에 쓰이고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았다고 한다.


다만 그들은 진실을 CEO 앞이나 공식 회의에서가 아니라, 회사 복도나 술집에서 말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CEO가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CEO의 무지를 안주 삼아 마음껏 비웃을 수 있었다. 공포로 통치하는 리더는 필연적으로 자신과 직원을 바보로 만들어 세상의 비웃음을 받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고 만다.


리더가 이런 잘못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모르는 문제가 항상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다시 말해 리더는 ‘진실의 수호자’ 여야 한다.


픽사 사장 에드 캣멀이 쓴 책 <창의성을 지휘하라>의 말미에는 ‘진실의 수호자’가 되려는 리더라면 경청할만한 경구가 여럿 적혀 있다.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직에 공포가 존재한다면, 공포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리더의 임무는 공포를 유발하는 원인을 찾아내고, 이해하고, 근절하는 것이다.”


“어느 직원이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동의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리더의 첫번째 임무는 직원들이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다.”


”직원들이 회의실보다 복도에서 진실을 얘기한다면, 리더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문제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보고받지 않거나 회의 중에 처음으로 알게 된 경우,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리더가 많다. 이런 착각을 버려야 한다.“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경영자와 직원이 서로를 바보로 만드는 조직: 발단은 리더가 심은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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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경영자와 직원이 서로를 바보로 만드는 조직: 발단은 리더가 심은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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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0일 오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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