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인아]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동아일보
필자의 두 번째 책에 대한 후기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에 종종 올라오는데, 독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문장이 있다.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주는 이도 없고 신통한 결과도 없어서 이대로 계속하는 게 맞는지 흔들리고 외로웠는데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힘이 되었다고.
하지만 계속 노력해야 할지 그만둬야 할지 알지 못해 계속 흔들리고 불안해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하긴, 누군들 확신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강연을 하면 단골로 나오는 질문들도 이런 거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하는 게 맞는가?’, ‘열심히 해봐야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그냥 월급 받는 만큼만 하면 되지 않는가?’ 등등.
그럼 나는 즉답 대신 질문을 던진다. 자, 퇴직이나 이직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게 된다. 후임자가 차질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정보며 연락처며 현황 등을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업무를 하며 기울였던 노력, 그래서 내 안에 쌓인 노하우와 인사이트까지 다 후임자에게 넘겨주고 빈 몸으로 나가는가? 머리와 마음도 모두 초기화해 그곳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떠나는가? 그럴 리가. 그렇지 않다.
업무를 하면서 쌓은 경험, 노하우, ‘아하!’ 했던 깨달음들은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회사에 다 두고 빈 몸으로 나가는 게 아니며 그것들은 결국 내 경험, 내 노하우, 내 인사이트라는 얘기다. 노력의 결과가 회사 것으로 귀속되는 게 아니라 나의 것으로 남는다면 평가나 열매와 상관없이 애쓸 만하지 않은가?
나는 오래전 광고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29년 일하고 퇴직했다. 지금은 책방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 살고 있다. 책방을 열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예전에도 열심히 일했겠지만 그래도 오너가 되니 다르지 않냐고.
나는 그 사람들을 실망시키곤 했다. 다르지 않다고,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나는 회사 일이 아니라 내 일을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우리는 모두 타인의 영향을 받는다. 더구나 조직에 속한 사람이라면 시스템의 자장 안에서 일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애썼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하는 고민의 정체는 결국 타인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말이다. 알면 통제력이 생긴다. 지금의 노력을 계속할지 말지 생각이 그저 맴돌거나 막연할 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문제의 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정체에 닿으면, 그러니까 나를 흔드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나면 눈앞이 환해진다.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기분은 불쾌하겠지만, 실은 나 자신을 위해 애쓴 것이고 내 안에는 노력의 흔적들이 쌓이고 남는다는 것, 그러니 내 노력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칭찬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만둘 이유는 없다는 것.
이전 회사 얘기를 하나만 더 하자. 광고회사 시절 우리는 늘 크고 작은 경쟁 프레젠테이션으로 날을 지새웠다. 어떤 때는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서도 졌고, 어떤 때는 그만 못한 아이디어로도 이겼다.
내가 꽤 선배가 되었을 때 후배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클라이언트가 우리 아이디어를 택했다고 해서 그게 꼭 좋은 아이디어라는 뜻도 아니고, 우리를 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못한 것도 아니다. 우리 ‘쟁이’들은 클라이언트의 평가에 휩쓸리지 말고 중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신이 만약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와 기쁘거나 반대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실망하고 흔들릴 때면 이렇게 생각해 볼 일이다. “용케도 나의 가치를 알아보는군, 혹은 놓쳤군”. 세상의 칭찬 혹은 무시와 별개로 당신이 애쓴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당신 안에 쌓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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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6일 오후 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