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는 생각의 깊이보다 속도에, 완결성보다 경쾌함에 끌렸던 것 같다. 이제 순발력이나 발랄함에 지적인 흥분을 느끼지는 않는다. 젊을 때 반짝반짝해 보였던 또래들을 모처럼 다시 만났는데 오가는 이야기들이 얄팍하고 껄렁해서 놀란 적이 여러 번 있다. 최악은 “우리 그때 재미있었지” 하면서 옛날얘기를 되풀이하는 부류다.
내 관찰로는 영리한 청년이었다가 내용물 흐릿한 중년이 된 친구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책을 읽지 않고 타고난 영리함과 순발력으로 30대를 버틴 것이다. 정신의 어떤 부분을 제대로 훈련하지 않은 것이다. 그 훈련은 근력 운동과 흡사하다. 어린아이의 몸을 보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20대도 어느 정도 그렇다. 하지만 40대는 체형을 보면 평소에 운동을 얼마나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티가 난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운동 부족이 몸의 병이 되어 돌아온다.
다른 경험들이 독서를 대신할 수 있을까. 내게는 걷기 운동으로 코어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는 소리만큼 전망 없게 들린다. 한 업계에서 20년 정도 일하면 부장급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그 이상을 원하면 정신에 꾸준히 간접 체험과 지적 자극을 공급해야 한다. 나는 독서 부족이 노년에 마음의 병을 일으킬 거라 믿는다. 삶이 얄팍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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