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대에도 읽는 이들은 있어... 종이책 죽음? 나는 그들을 믿는다
조선일보
01 . 개인적으로 참 고된 하루였는데 그런 하루 중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옹의 인터뷰가 일간지를 통해 공개되었기 때문이죠. 사실 하루키에 관련한 기사를 여러 번 봤고, 그가 하는 이야기가 매번 휘황찬란하게 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의 연장선이었지만 그래도 '비슷하면서도 다른 울림'이 있는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만큼 또 조금 성장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역시 한켠에서 성장을 바라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그래서 오늘은 하루키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 세 개를 소개하며 제 생각을 덧붙여보려 합니다.
02 . “비결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44년에 걸쳐 열심히 소설을 써왔고, 그사이 독자들의 신뢰를 얻어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작품마다 조금씩 신뢰를 축적해 온 것이죠. 물론 두말할 것 없이, 오랜 세월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 예전에 축구 감독인 조제 무리뉴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Special One이라고 부르지만 그건 오랜 시간 축적된 신뢰(credit)의 결과물이다. 신뢰란 귀한 오일과 같아서 아주 커다랗게 보이는 성취를 비틀어 짜야 겨우 몇 방울 손에 떨어지는 야속한 공식을 가지고 있다."
저는 하루키와 같은 거장이 '오랜 기간 열심히 했다'라는 말을 할 때 그 임팩트가 정말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큰 것 같아요. 오래 하는 것도 대단하고, 열심히 하는 것 역시 대단하지만 오랜 기간 열심히 하는 건 또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하루 종일 '오래토록 열심히'라는 말을 곱씹어 보게 된 것도 이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네요.
03 . “견고하지만 꽤 즐거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훌륭한 책도 있고, 아름다운 음악도 있고, 맛있는 블루베리 머핀도 있습니다. 다만 소설을 쓸 때, 조금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날 뿐입니다.”
→ 요즘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두 발이 땅에 붙어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본인의 세계관을 열기구처럼 띄워놓고 자꾸 다른 이들을 불러 태우려는 사람보다 두 발은 현실에 꼭 붙어있되 그 발걸음이 가벼운 사람이 참 좋습니다. 쉽게 말해 이상을 베이스로 현실을 사는 타입이 아니라 현실을 베이스로 이상에 가까워지려는 사람을 뜻하는 거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오늘 하루키 옹의 입을 통해 '견고하지만 꽤 즐거운 세상'이라는 표현을 들으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더라고요. 일상을 묵묵히, 쫀쫀하게 살지만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가는 그 모습이 멋지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죠.
04 . "긴 소설을 쓰는 것은 서바이벌 훈련과 비슷해요. 신체적인 강인함이 예술적인 감수성만큼이나 중요하거든요.”
→ 나이가 한살 두 살 더해지면서는 클리셰라 생각했던 어록에 점점 더 공감하게 되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알고 보니 클래식이어서일까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혼이 깃든다'는 말 역시 그렇습니다. 매일 운동을 즐기며 느끼는 감정 역시 하드웨어를 유지하는 그 힘이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원천이 된다는 사실과 맞닿아있죠. 그래서 소설가라는 세상 자유로워 보이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프로 직장인과 같은 루틴을 유지하는 하루키 옹의 삶이 더 대단해 보입니다. 그걸 무려 40년 넘게 이어가고 있단 사실에도 말이죠.
05 . 저는 이런 슴슴한 인터뷰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쓰는 이의 입장에서는 헤드라인 카피로 뽑을 자극적이고 매콤한 소스가 없어 아쉬울지 모르지만 읽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평양냉면 육수 같은 맛이 나거든요. 입에 넣는 순간은 밍밍할지 몰라도 혀와 입천장 전체에 퍼지는 감흥은 오랜 시간 우려낸 그 내공을 가늠하기에 충분하니 말입니다.
06 . 하루키를 좋아해도 괜찮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 인터뷰는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잘, 꾸준히 해온 어느 베테랑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한 번 읽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지금 당장 별 자극이 없다고 해도 어느 순간 그런 삶의 맛을 이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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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일 오후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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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보기기록은 문제가 아니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본들, 아마도 젊은 날과 똑같이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별로 유쾌한 일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역할이 있다. 그리고 시간은 나 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충실하게, 훨씬 정직하게 그 직무를 다하고 있다.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전진해오지 않았는가.
... 더 보기직장인으로서 10년 정도 일하게 되면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바로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을 받게 되는 인사발령이다. 팀원이었을 때는 내게 주어진 업무를 내가 가진 능력과 주변 동료들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그에 합당한 평가와 보상을 기다리며, 나쁘지 않는 리워드와 내 위치에 안도하며 또 새해를 맞이하고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과정에 큰 어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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