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과 사람 사이] 커리어 탐사의 방황과 창조성, 허준이 교수와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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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커리어 경로을 보고 있자니 두 개의 단어가 떠오른다. 하나는 ’탐사(exploration)‘이고, 다른 하나는 ’이용(exploitation)‘이다. ‘탐사’는 탐색(search), 변화, 위험 감수, 실험, 발견 같은 활동을 의미한다. ‘이용’은 선택, 정교하게 가다듬기, 실행, 효율성을 뜻한다.
수학자가 되기 전 방황처럼 보이는 허 교수의 이력은 ‘탐사‘로 볼 수 있겠다. 시인이 되려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1년 동안 이런저런 문학책을 읽기도 했다. 글쓰기 실력을 살려 과학기자가 되려는 시도도 했다. 자신에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 활동이다. 최종적으로 수학자가 되기로 결정한 이후 그 길을 더욱더 정교하게 가다듬고 실행한 건 ‘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탐사’의 장단점은 분명해 보인다. 탐사는 인생 경험의 폭, 즉 레인지(range)를 넓힌다. 이는 혁신과 창조의 동력이 된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에서 서체를 공부한 게 나중에 개인용 컴퓨터의 디자인 혁신으로 이어진 게 그 예다. 처음부터 ‘컴퓨터 개발이 나의 길’이라며 그 길에만 집중했다면 서체를 공부했을까? 아닐 것이다.
허준이 교수도 시인이 되겠다고 읽은 문학책들이 수학 문제를 푸는 창조성의 바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분야의 통찰을 활용할수록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다. 혁신과 창조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탐사는 실패 위험이 높다는 문제가 있다. 한 영역에 집중하지 않고 이일 저일 떠돌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결과를 맞을 수 있다. 아무런 성취를 이루지 못할 위험이 있다.
반 고흐를 예로 들어보자. 데이비드 앱스타인은 책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에서 “반 고흐가 서른일곱 살이 아니라 서른네 살에 죽었더라면, 그는 역사에 각주로도 기록되지 못했을지 모른다”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의 작품은 인생의 후반기에 쏟아졌고, 그 즈음에야 그는 화단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고흐는 커리어 상의 온갖 실패를 거듭했다. 앱스타인은 이렇게 썼다. “그는 학생, 미술상, 교사, 서점 점원, 유망한 목사, 순회 전도사였다. 시작은 유망했지만, 시도한 모든 길에서 화려하게 실패를 거듭했다.”
고흐는 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쓰기까지 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언제나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뭔가를 잘한다고 본능적으로 느껴!……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 안에 뭔가가 있어. 그런데 그게 대체 뭐냐고!”
고흐는 자기 내면 안에 있는 그 뭔가를 찾기 위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고통을 겪었다. 그는 최종적으로 화가가 되어 미술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성취를 일궈냈지만, 우리가 모르는 무명의 많은 이들은 그런 탐사 끝에 흔적 없는 삶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허준이 교수는 성공했지만, 시인이 되겠다고 학교를 중퇴한 이들 중 일부는 인생의 쓰디쓴 맛을 보고 힘겨운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앱스타인은 책의 서문에서 스포츠 스타 타이거 우즈와 로저 페더러를 비교한다. 우즈는 생후 7개월째 골프채를 잡았다. 그의 아버지는 우즈가 네 살 때부터는 아침 9시에 골프장에 들여보낸 뒤 여덟 시간 뒤에 데려오곤 했다. 우즈는 커리어의 레인지를 넓히는 탐색은 필요하지 않았다. 골프에 집중했다.
페더러는 달랐다. 엡스타인은 책에 이렇게 썼다. “아이 때는 일요일마다 아빠와 스쿼시를 쳤다. 또 스키, 레슬링, 수영, 스케이트보드도 잠깐씩 해보았다. 야구, 핸드볼, 테니스, 탁구도 했고, 이웃집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배드민턴도 쳤다. 훗날 그는 이렇게 다양한 스포츠를 접한 것이 운동 실력과, 손과 눈의 조화로운 발달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마침내 다른 스포츠들-특히 축구-을 포기하고 테니스에 집중하기로 했을 때, 또래 선수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근력 코치, 스포츠 심리학자, 영양사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늦게 시작했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볼 때 그의 발전에 지장이 생긴 것은 아닌 듯했다.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들조차도 대개 은퇴할 나이인 30대 중반에, 그는 여전히 세계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 및 사회 시스템은 우즈처럼 어릴 때부터 한 가지에만 집중해 성장하는 이를 ‘영재’라는 이름으로 숭상하는 반면, 인생의 다양한 경험과 탐색을 추구하는 이들은 낙오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고흐나 페더러같이 삶과 커리어를 탐색하는 학생들은 한국 교육이나 사회 시스템에서 숨 막히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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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1일 오후 12:05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청년미래플러스 사업, 이전에 공유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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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보기5년전부터 트렌드나 사업전략 강연이나 멘토링, 컨설팅했을 때마다 점차 변화하고 있는 중장년과 시니어의 속성과 라이프스타일을 언급하면서 새로운 사업기회로 이야기해왔다. 일부는 감사하게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사업아이템을 만들거나 피봇팅해서 현재 잘나가는 스타트업들도 몇몇 있다.
... 더 보기1. 큰 수의 법칙. 시도가 많아질수록 결과는 평균에 수렴한다. 주사위를 많이 던질수록 각 숫자가 나오는 확률은 1/6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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