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0점짜리 남편, 100점짜리 남편, 최고의 남편은 어떤 유형?」이라는 제목으로 남편 체크리스트를 소개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얼마나 좋은 남편인지를 15개 문항을 각 5점으로 측정하는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 이런 질문을 접한다. 몇 점짜리 남편, 아내, 아빠, 엄마, 친구 등등 말이다. 어떤 대상을 점수화하는 가장 큰 이점은 쉽게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남편과 아주 좋은 남편의 차이를 인식하기는 어렵지만, 60점짜리 남편과 90점짜리 남편은 쉽게 비교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대상을 점수로 바꾸는 과정에서 점수가 만드는 마음의 작동 오류를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 “몇 점짜리”의 함정이다. 점수는 세상 모든 것에는 높고 낮음이 분명히 있고 숫자가 높은 것은 낮은 것보다 좋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마음의 오류를 만든다.


이에 관해 시카고대학 심리학과 크리스토퍼 시(Christopher Hsee) 교수는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시 교수는 먼저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만 실험 대상자로 선별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적게 일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는 쪽과 많이 일하고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는 쪽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만약 여러분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쪽을 선택했을까? 설마 더 많이 일하고 보상은 더 싫은 선택지를 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참가자 중 아주 특이한 성격을 지닌 사람은 없었던 덕에 모든 참가자는 적게 일하고 보상은 더 좋은 방법을 선택했다.


아주 이상한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진짜 실험은 그 다음이다. 이번에도 역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실험 참가자로 뽑았다. 그리고 이번엔 쉬운 일을 하고 60점을 받는 것과 어려운 일을 하고 100점을 받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획득한 점수는 아이스크림과 교환할 수 있었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얻으려면 60점,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얻으려면 100점이 필요하다고 안내했다. 실험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했음에도, 대다수 참가자는 어려운 일을 하고 100점을 받고 그 점수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과 바꾸는 선택을 했다.


사람들은 높은 점수가 더 좋다는 단순한 직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선호나 행복을 위한 선택이 아닌 그저 높은 점수를 얻는데 치중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점수가 주어지지 않을 때는 자신에게 이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점수가 제시되는 순간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데 매몰되어 스스로에게 불리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점수가 합리적인 판단을 이끄는 좋은 도구라고 생한다. 그런데 종종 점수는 우리를 합리성에서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 무언가를 점수화하는 순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는 경우가 생긴다.


가격이 동일한 두 개의 중고 사전이 있다. 사전 A는 수록된 단어가 1만 2,000개지만 표지가 낡았다. 그리고 사전 B는 수록된 단어는 1만 개로 상대적으로 적지만 표지는 새것에 가깝다.


두 사전을 동시에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어떤 사전을 구입하겠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1만 2,000개의 단어가 수록된 사전 A를 선택한다. 사전 두 개가 동시에 제시되었을 때는 수록된 단어의 숫자로 쉽게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실험 방식을 조금 바꾸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이번엔 다른 실험 참가자들에게 사전 A와 B를 순서대로 보여줬다. 사전 A를 보여주고 참가자 눈앞에서 사전 A를 치운 다음에, 사전 B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 상황에서는 2개의 사전을 동시에 비교하기가 어렵다.


참가자들은 이제 단순히 단어의 분량이 아닌 사전의 상태나 다른 조건에 주목하기 쉬워진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제시되는 조건에서 사람들은 사전 B를 더 많이 선택했다. 수치가 보이지 않기에 양적인 비교가 아니라 질적인 상태가 더욱 중요한 평가 잣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더 좋은 판단과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양보다는 질에 주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짜리 가족여행을 다녀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족여행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느꼈느냐가 더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점수가 가진 장점도 무척 많다. 조직에서 빠르고 합리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점수가 필수적이다. 많은 경우 양적인 판단은 별 고민 없이 쉽게 내릴 수 있으며 리스크도 적다.


별 네 개보다는 별 다섯 개짜리 식당을 선택하거나 독자 평점이 8점짜리보다는 10점짜리 책을 보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집단지성의 결과라고 우리가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좋은 판단을 위해서는, 앞서 얘기한 양적 데이터의 그림자를 보완해야 한다.


아내가 나를 100점짜리 남편이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100점을 받았다고 해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나 애정이 더 생길 것 같지는 않다. 단순히 몇 점짜리 남편이 아닌, 나의 존재나 행위에 관한 느낌이나 의미를 말해주는 것이 관계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리더라면 인사평가 피드백 과정에서 등급 또는 점수와 질적 평가 결과를 동시에 통보하는 것이, 질적인 영역에 주목하지 못하게 만드는 피드백 방식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리더가 구성원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피드백을 한다면 점수 또는 등급과 질적인 평가를 분명히 구분해서 시도해야 한다. 앞서 사전 실험처럼 양적 정보와 질적 정보가 동시에 주어질 때, 우리는 양적인 영역에 집중해서 질적인 내용을 간과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면담 자리에서 눈앞의 평가지를 치우기라도 해야 한다.


우리는 조직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점수로 평가하거나 평가받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점수가 만드는 마음의 작동 오류를 기억하고 질적인 평가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시도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의 시작은 “당신은 몇 점짜리 동료입니까?”였지만,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어떤 동료입니까?”

당신은 몇 점짜리 동료입니까?

ㅍㅍㅅㅅ

당신은 몇 점짜리 동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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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7일 오후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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