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의 착한 행동과 좋은 브랜딩의 상관 관계 ]
01.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브랜딩이라는 단어는 조금은 결이 달라 보이기도 합니다. 둘을 가까이 붙여 놓기라도 할 때면 '뭐야? 그럼 브랜딩을 위해서 착한 일을 하겠다는 거야?'라는 비판적인 화살이 날아오거든요.
02. 다만 저는 그 질문에 변명 대신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라고요.
어쩌면 그런 반응을 하는 분들은 브랜딩을 그저 기업의 외형이나 이미지를 관리하는 것 정도로 여기는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브랜딩이라는 게 우리다움이라는 아이덴티티를 확보하는 일련의 과정과 노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기업의 책무와 브랜딩은 오히려 서로 멀어지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에서 꼭 닮아있으니까요.
03. 작년 연말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각국의 러쉬(LUSH)인스타그램 폐쇄 소식이 화제입니다. 러쉬의 최고 디지털 책임자이자 제품 개발자인 잭 콘스탄틴은 'SNS는 이용자들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엄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해로운 성분을 넣지 않는다는 제품 원칙을 지키고 있고 이는 디지털 환경에서도 동등하게 적용된다. 우리만의 방식을 찾을 때까지 SNS는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04. 해석하자면 너무 자극적이고 무차별적인 콘텐츠가 난무하는 SNS 환경 속에서 러쉬를 계속 운영하는 것이 맞는지를 고민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일각에서는 계정을 삭제한 것은 아니니 하나의 퍼포먼스로 치부해야 한다고 하지만, 전 세계 러쉬 팔로워 수를 감안했을 때 엄청난 손실을 떠안은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한 것이죠.
05. 사실 어느 기업이라도 러쉬 정도의 선택과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러쉬는 자신들이 그동안 쌓아온 브랜드 자산이 탄탄하기 때문에 이런 시도도 해볼 수 있는 거겠죠. 하지만 저는 러쉬의 과감함보다는 러쉬가 선택한 방법과 태도를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무턱대고 ESG다, 착한 기업이다 외치지 말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를 규정해 보는 것부터 시작하기를 바라봅니다.
06. 회사의 의사 결정권자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이제 우리도 이런 거 한 번 해봐야 하지 않나?'입니다. 저는 그 말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된 표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는 시기는 어떤 근거로 산정됐고,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며, '이런 거'는 어디서 주워들으신 방법론이거니와 '한 번'이라는 떠보기식 접근은 스스로 그 박약한 의지를 보여주고 계신 걸 아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07. 그렇다고 실무자의 편에서 모든 고충을 이해해 주는 것도 무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이런 것 쫌 핫해 보이는 거 같아'라는 관점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보거든요. 반대로 회사가 영리기업인지 비영리단체인지를 구분하지 못한 채 퍼주기 계획을 짜는 것도 무리수라고 생각하고요.
08. 그러니 또다시 결론은 '우리 다움'에 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 판에서, 우리다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규정해 보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다움을 더 강화할 수 있는지를 정의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분명 기업의 책임과 좋은 브랜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효력을 발휘할 거라고 믿습니다.
09. 더불어 다른 회사나 브랜드들이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는 케이스를 보며 '대단하다'라고만 여기지 말고 '왜 하는가'라는 본질에 접근해 보기를 권해드립니다. 어쩌면 저들이 저걸 하니까, 우리는 이걸 하는 게 우리에게도 또 세상에도 더 의미 있는 거겠다는 결론을 낼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