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다룬다는 것은 '인식'과 '문화'를 다루는 일

01. MS 윈도우95의 최초 상업 번역을 담당한 노재훈 (와이즈에스티글로벌) 대표님의 인터뷰 영상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수십 년 동안 정말 정말 궁금해했던 내용을 스브스뉴스에서 다뤄줘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02. 상업 번역(commercial translation)이란 문자 그대로 비즈니스 세계에서 통용되는 말을 다른 언어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영화나 문학 작품과는 다르게 소비자나 이해관계자들에게 명확히 의미를 전달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럼에도 간결하고 세련되고 지속 가능한 언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너무도 어렵지만 제가 정말 애정 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특히 예술 작품이 여러 사람에 의해 N가지 버전으로 번역될 수 있다면 상업 번역은 한 번 번역된 결과물이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 막대하기도 하죠) 03. 노재훈 대표님은 3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윈도우95가 처음 상륙할 당시 운영체제 안의 모든 영문 용어를 한글로 1:1 번역하는 작업을 담당했고, 그 과정에서 '바탕화면(desktop)', '바로가기(shortcut)', '즐겨찾기(favorite)'같은 단어를 번역해 냈습니다. 지금 우리가 윈도우95뿐 아니라 다른 UI, UX 영역에서도 이 용어들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걸 보면 이건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영향력이라고 봐야겠죠. 심지어 윈도우를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다는 요즘의 어린 학생들조차 '아이폰 바탕화면에~'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04. 저는 이렇게 자신의 관점으로 누군가의 의식을 선점하고 그걸 문화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늘 존경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작업은 개인의 집요함과 정성이 얼마나 투입되었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편의성이 대를 거쳐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하지 않을 수 없죠. 05. 어떤 분들은 '그냥 처음부터 데스크탑이라고 해도 되지 않아?', '숏컷이나 페이버릿이라고 썼으면 덜 헷갈리고 좋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일부분은 동의하지만 이렇게 상업 번역해낸 문화가 우리에겐 다른 영역에까지 생각을 확장해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사실 엄청난 이펙트라고 봅니다. 노재훈 대표님의 노고가 없었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열기/닫기/보내기/취소하기 등도 open/close/send/cancel로 사용하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06. 마지막으로 '챗GPT가 상업 번역을 대체할까요?'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적어도 아직까지) 챗GPT는 대체재이기보다는 협업 도구다'라는 말씀에 크게 공감이 갔거든요. 특히 언어를 다루는 작업에 있어서는, 적어도 사람들의 인식을 다루고 문화를 만드는 일에 있어서는 챗GPT가 다듬어내지 못하는 그 마지막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빈틈을 채워주는 게 인간의 역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해낸 일을 기계가 마무리하는 시대가 있었다면, 인공지능이 한 일을 인간이 마무리해야 하는 영역이 또 생기는 거겠죠. 07. 짧은 영상이지만 상업 번역과 네이밍, 챗GPT와 인간의 활동에 대한 적지 않은 인사이트를 주는 콘텐츠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시간이 되신다면, 아니 시간을 내서라도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바탕화면', '즐겨찾기', '바로가기'...윈도우95 한글판 작명은 누가 했을까? /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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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9일 오전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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