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세요. 온 세상을 막론하고 오해받지 않은 인류는 없어요.

책을 읽는다는 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책을 통해 저자를 만나고 그의 생각을 접하게 됩니다. 만날 사람을 선택하듯 책을 골라본다면 어떨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과 낯설고 새로운 사람입니다. ​ 전자는 나와 비슷한 생각과 취향과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고 나의 생각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후자는 나의 영역 밖에 있는 다른 경험을 했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불확실성이 큽니다. 관계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관점이나 생각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 경제경영이나 자기 계발서는 대부분 후자에 속합니다. 스스로의 견문을 넓히고 생각을 넓히고, 더 성장하기 위해 읽는 책 들이니까요.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의 목적이 더 큽니다. 자극을 받고 동기부여도 됩니다. 이런 류의 책들만 계속 읽다 보면 때론 지치기도 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꾸준한 노력은 의지력도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성장은 고통을 필요로 합니다. ​ ​ ​ 산문이나 에세이는 전자이면서 동시에 후자입니다.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과 인생,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가지며 살아갑니다. 하나하나의 삶은 모두 다른 별과 같습니다. 우주에 독립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별입니다. 유니크하고 그 누구와도 다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이 모두 새롭게 느껴집니다. ​ 동시에 우리의 삶은 많은 부분을 공유합니다. 동질성을 갖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 겪게 되는 문제들은 비슷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은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변하는 것과 그것들에 대한 생각 역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합니다. 누가 가르쳐 주었거나 배운 적도 없지만 삶의 보편성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느낍니다. 같은 점을 찾고, 공감하며, 편안함을 느낍니다. ​ ​ ​ 이 책은 매우 짧은 산문들을 모아둔 얇은 책입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대화의 밀도' 중 지인에게 선물하는 에세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책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소개된 책 중에 골라서 읽게 된 책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입니다. ​ 얇아서 쉽게, 그리고 빨리 읽었습니다. 담백하고 단아합니다. 익숙한 사람의 모습도 있었고, 새로운 사람도 만났습니다. 내 생각과 같은 결의 생각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생각 덩어리를 문장으로 풀어내는 것은 엄청난 능력입니다. 책에서 읽은 문장들이 내 안에 잊고 있던 생각을 소환해낸 것 같은 신기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별 기대는 없었습니다. 읽으며 밑줄 친 문장과 접힌 페이지는 늘어갔습니다. 생각보다 위안과 자극을 받은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삶과 관계 그리고 시간과 인생에 대해서 짧고 선명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기 계발서의 낯설음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사람이라는 점을 공유하며 같은 이야기를 편하게 들은 기분입니다. ​ ​ ​ ​ ​ ​ ​ ——— 역경이 주는 보람. 역경 속에도 즐거움이 숨어 있고, 이를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경마저 평범한 일상 중 하나로 여겨야 한다. ​ ​​ ——— 도움이 되는 존재. 누군가에게 ‘약간의 도움’을 남기고 죽는다면 대성공이다. 그런 점에서 부모는 ‘약간’이라고 말할 수 없는 ‘위대한’ 영향을 자녀들에게 남긴다. 길에서 처음 만난 아기 엄마를 도와 함께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것은 ‘약간의 도움’이지만, 상대방에겐 뜻하지 않는 행운이다. 나는 행운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되는 것이다. ​ ​ ——— 떨어지길 잘했다고 말할 날이 온다.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다음 운명을 기다리는 편이 생산적이다. 인간에겐 운명이 강제로 부과된다. 우리가 바꿀 수 없으므로 운명이다. 또 억지로 바꿔본들 부자연스럽고 아름답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감수하고 그 운명을 토양 삼아 인생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운명을 초월하는 인간의 위대함이다. ​ ​ ——— 모순이 생각하는 힘을 준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인간답게 숭고해질 수 있는 까닭은 세상이 매우 불완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정의는 행해지지 않고 약육강식이 난무하며, 사람들은 권력과 금전에 수시로 유혹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에 저항하고자 보다 인간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 ——— 행복한 순간에는 진짜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다. 행복한 인간은 지나치게 너그럽고,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나 오늘의 행복과 자신감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두려워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반드시 행복해져야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행복이 노력에 의해 얻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내가 나쁜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운명이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의심 한 점 없는 망상이다. ​ ​ ——— 즉시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앞에 문제가 닥쳤을 때마다 쉽게 결론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때마다 하루나 이틀 밤을 푹 자고 이삼일을 별일 없이 보내버린다. 무턱대고 가만있는 건 아니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하다. 그렇게 시간을 끌며 버티는 도중에 최선의 대책도 아니고 결코 현명한 해결법도 아니지만 제법 나다운 결론, 훗날 나의 어리석음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대답이 나오는 것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경험해왔다. ​ ​ ——— 매사 적절한 때가 있는 법. 인간이 하루아침에 지혜로워질 수는 없다. 사람은 오랜 세월 헤매야 하며,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고, 때로는 어리석음에 정열을 불태우다가 끝내는 자신에게 필요한 최고의 선택을 내리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 ​ ——— 자기다울 때 존엄하게 빛난다. 뜻하지 않는 불행이 찾아오고, 이를 견뎌내는 와중에 깊고 넓은 인간성이 완성되기도 한다. 그것이 인간의 놀라운 점이다. 역경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빛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무한한 긍정에 나는 감탄하고 만다. 사람은 자기다울 때 존엄하게 빛난다. 매력적인 사람의 특징은 그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수용했다는 너그러움이다. ​ ​ ——— 괴로워하지 않는 요령. 나이가 들수록 운이라는 것이 어쩌면 신의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진다.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운이 없어서다,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실패에서 의미와 교훈을 찾게 되어 실패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실패를 예상한다는 건 실패에서 얻어지게 될지도 모를 이런 지혜를 의식하는 것이다. 그 의식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모든 노력을 기울여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의 힘이 미치지 않는 또 다른 측면, 다시 말해 운이라고 불리는 신의 의지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겐 신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이라는 분수에서 일탈하고 싶지 않아서다. ​ 내가 나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평가는 언제나 다르다. 그래서 신이 필요하다. 인간이 나를 오해해도 신은 나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다는 위로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신은 내가 무엇을 했는지 진실을 알고 있다. 세상에서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이는 나와 내가 믿고 있는 신뿐이다. 그러므로 가장 두려운 것은 나를 억압하는 세상이 아닌 내 안의 진실을 알고 있는 그분뿐이다. ​ ​ ——— 열심히 해도 안되는 게 있다. 쉽지 않겠지만 편히 마음먹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인생을 가늠해 보자. 되도록 나 자신을 가볍게 여기려고 연습하는 것이다. 익숙해진다면 쓸데없이 올라가는 혈압도 많이 낮아지리라. 무엇보다 화를 내는 횟수와 미워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든다. 이로써 우리는 보다 멀리 인생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은 매우 큰 즐거움이다,. 슬픔마저도 즐거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필연처럼 안고 있는 한계를 인정했을 때 기대를 밑도는 서로의 모습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해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확대된다. 감사가 늘어난 인생은 빛이다. 그 빛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신과 동등한 역할을 각자의 삶에서 취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이 우리의 취약점이 된다. 각자에게 주어진 한계를 인정했을 때 오히려 마음이 안정된다. ​ ​ ——— 타인은 나를 모른다. 함부로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넘겨짚지 말자고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타일러 왔다. 상대방을 위해 나의 희생을 감수하며 수고한 일이더라도 그가 고마움을 모른다고 해서 서운해한다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럴 수도 있음을 인식하며 미리 각오해둬야 한다.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형태는 서로 간에 뜻이 맞지 않고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오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관계가 틀어진다. ​ ​ ——— 오해받지 않은 인류는 없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산다는 것은 따뜻하게 이해받음과 더불어 함부로 무시되고 오해받는 고통이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임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슬픔이 찾아왔을 때 나만 이런 일을 당하고 있어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온 세상을 막론하고 지금 내가 참고 있는 이 슬픔을 맛보지 않은 인류는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해 내기 바란다. ​ ​ ——— 타인의 역할. 혼자 힘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당도할 수 없었다. 거부당하고 미움받고 괴롭힘을 당하고, 때로는 사랑받고 구원받으며 칭찬받았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있다. 그들 속에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 ​ ——— 약간의 거리를 둔다. 깊이 뒤얽힐수록 서로 성가스러워진다. 살다 보면 나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 한둘은 나오게 마련이다. 이를 피할 도리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 서로에게 어느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 생긴다. 어머니 말씀처럼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듯싶다. 서로의 신상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금물이다. 신상을 털어놓는 그 순간부터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착각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 ​ ——— 타인의 단점. 타인의 장점을 깨닫는 것이 재능이라면 타인의 좋지 않은 점을 깨닫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본능이다. 장점을 발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재능이다. 따라서 갈고닦지 않고서는 개발되지 않는다. ​ ​ ——— 언제쯤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 오직 그 생각뿐. 해 질 녘에 창밖을 바라보는데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벅차올랐다. 나는 여섯 개의 연재를 중단하고 터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제부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휘감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죽음을 떠올리지 않았다. 오직 언제쯤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결핍’에 의해 얻어진 생활에 대한 실감이었다. 염려와 공포는 불필요한 것들을 소유함으로써 생겨난다. ​ ​ ——— 마음을 비운다.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 비우기를 잘하는 편이다. 특별히 사상적인 고민의 결과는 아니다. 다만 이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 곳임을 잊지 않고 있으므로 끈덕지게 좇아가겠다는 집착에 시달리거나, 효율이라는 것을 따져 계산하거나, 시기가 이르지 않은 일들이 당장 이루어지기를 욕심내지 않는다는 정도다. 목적은 어차피 한 가지밖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한 후 나머지는 마음을 비우는 게 상책이다. 마음을 비우는 일은 언제나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마음을 비우는 일에는 자신의 생명도 포함된다. 불운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조금씩 비워나간다면 절망과 원망에 시달릴 일이 없다. 절망하고 원망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나서서 나의 상황을 개선해 주리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 ​ ——— 불분명하므로 부드럽다. 내 인생에서 운명은 매우 중요한 무게를 차지하고 있다. 나 역시 노력으로 운명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바라지만 그에 못잖게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믿음을 모순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만에 하나 노력에는 반드시 성과가 있다는 진리가 세상을 지배한다면, 우리의 삶은 경박해질 것이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은 성공 앞에서는 내가 노력한 덕분이라며 터무니없이 우쭐대다가도 작은 실패에 금방이라도 파멸할 것처럼 스스로를 원망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내겐 노력이 꼭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 기막힌 현실이 구원이다. 변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노력과 성공의 불분명한 인과관계 속에서 세계는 내가 살아가기에 조금은 부드러운 곳이 되었다. ​ ​ ——— 잠깐의 여유. 세월이 흘러 인생을 알게 될수록 내가 얻은 것들 중 대부분이 우연에 따른 결과물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때부터 ‘감사’의 면목이 자연스레 몸에 새겨지는 것이다. 감사는 마지막까지 우리와 함께하는 영혼의 고귀한 표현이다. 세상 천지에 감사할 만한 일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불행한 사람이더라도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될 이유를 마련해 준 고마운 누군가가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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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0일 오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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