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일이 있었을 때 그 일을 통해서 느낀 기분을 계속해서 떠올리면서 끊임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던 적이 있다면, 이런 ‘곱씹기(rumination)’가 가진 부작용 또한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나쁜 일이 지나갔어도 기분이 계속해서 나쁘다. 생각하면 할수록 원래보다 기분이 더 나빠지기도 한다. 감정을 붙잡고 곱씹다 보면 내가 기분이 나쁜 이유와 그것의 의미, 이런 기분을 느끼는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내 삶에 얼마나 부정적인 요소들이 많은지 등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 늘려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번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버리면 그 속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마음 속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가면서 삶을 실제보다 더 부정적으로 느끼는 것은 대표적인 우울증상의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곱씹기가 우울증을 더 심화시킨다는 우려들이 있었다.
안 좋은 기분이나 생각이 밀려올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이들은 주로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알람이기 때문에 우선 문제가 실재하는지 확인하고 (오경보가 아닌지 확인하고), 문제가 실제 존재한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언뜻보면 곱씹기는 안 좋은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 바람직한 것 같지만, 곱씹기를 자주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해소되어도 지나간 나쁜 기분을 계속 반추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방법을 찾기보다는 안 좋은 기분을 느끼는 ‘나 자신’에 집중해서 자기 기분 속으로 침잠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보다 긍정적인 요소들은 무시하고 부정적인 요소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곱씹기는 실제로는 문제 해결과 거리가 먼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렇게 ‘곱씹기’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신의 내적 상태로부터 바깥으로 눈을 돌려 정신을 환기하는 ‘주의돌리기‘ 전략을 쓰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가진 유무형의 자산들에 집중하는 ’감사하기‘ 전략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심리학자 크리스틴 레이어스(Kristin Layous) 등의 연구에 의하면, 위의 세 가지 경우 중 ’감사하기‘가 가장 부정적 정서를 줄이는 반면 긍정적 정서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분, 자신의 사람 됨됨이, 현재의 기분이 계속 유지될 때 발생할 결과를 생각하게 하거나(곱씹기), 자기 자신과는 상관 없는 중립적인 자극(예; 둥둥 떠다니는 배, 선풍기)을 생각하게 하거나(주의돌리기),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했다(감사하기).
그 결과 세 조건 중 곱씹기를 한 사람들이 가장 높은 부정적 정서를 보였다. 특히 기존에 우울증상을 심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곱씹기를 할수록 부정적 정서가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주의돌리기를 한 사람들과 감사하기를 해본 사람들은 곱씹기를 한 사람들보다 부정적 정서를 덜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긍정적 정서에 있어서는 주의돌리기는 생각보다 큰 효과가 없었고(곱씹기와 큰 차이 없음), 셋 중 긍정적 정서를 가장 크게 높여준 것은 감사하기였다.
단기적으로 부정적 정서를 줄이기 위해서는 주의돌리기도 효과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긍정적 정서를 높이기 위해서는 감사하기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효과는 우울증상이 상대적으로 심한 사람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우울증의 문제점에 대해 연구자들은 부정적 정서를 계속해서 느끼는 것 뿐 아니라, 긍정적인 정서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 또한 중요하게 지적한다. 부정적 정서를 줄이는 것은 안도감을 가져다 주지만,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여서 새로운 시도를 해볼 동력까지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움추린 마음을 펴고 삶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것은 긍정적 정서의 역할이다. 이런 점에서 내 삶에 존재하는 소중한 것들을 작은 것이라도 떠올려보는 것이 긍정적인 정서가 돋아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고무적인 소식이다. 마음이 활짝 피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