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리드 히치콕, 스티븐 스필버그, 그리고 다음은 봉준호“. 2019년 10월 30일 미국 뉴욕타임스가 봉준호를 분석하며 쓴 기사의 제목이다. 봉준호는 어떻게 세계가 인정하는 ‘괴물’이 될 수 있었을까? 1️⃣이상한 할리우드 키드 봉 감독은 자신을 ‘이상한 사람‘, ’변태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는 ”남들이 했던 건 안 한 감독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2019년 칸 영화제 당시 한 미국 기자는 ”봉준호가 곧 새로운 장르“라고 했다. 잠시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자.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너무 좋아했는데 세균에 대해 강박관념이 있던 어머니가 극장은 더럽다며 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던 흑백TV로 할리우드 고전 영화들을 봤죠.” 꼬마 봉준호가 영화를 접한 창구는 지금은 사라진 주한미군을 위한 채널 AFKN이었고, 여기서 할리우드 명작들을 만났다. 봉 감독이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은 캠퍼스 안팎에서 수시로 데모가 벌어지던 시기다.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고 자유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고,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폭발했다. 그동안 금지돼 있던 세계 각국 영화들이 1990년대 내내 공식적 루트와 비공식적 루트를 가리지 않고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봉 감독 역시 이 거대한 문화혁명의 한복판에서 다양한 세계 문화를 흡수할 수 있었다. 물론 동시대를 살아왔다고 모두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꼼꼼하게 포착하는 안테나가 있어야 시대의 공기를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자란 할리우드 키드는 문화적 다양성이 폭발하던 시기에 청춘을 보내며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을 관찰해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다이내믹한 한국사회라는 하나의 점과 할리우드 장르영화라는 하나의 점, 그리고 두 세계 속에서 살아온 봉준호의 일상이라는 또 하나의 점, 이렇게 세 개의 점이 연결돼 ‘봉준호 장르’라는 익숙하면서도 매우 이상한 세계가 만들어졌다. 2️⃣최고의 재능을 뽑아내는 리더십 영화는 혼자 만들 수 없다. 수많은 인력이 함께 작업한다. 적재적소에 꼭 맞는 인물을 투입해 일하게 만드는 건 감독의 능력이다. 봉 감독은 카리스마로 현장을 지휘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사람들을 조곤조곤 끊임없이 설득해 결국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낸다. 영화 ‘마더’ 촬영 현장에서 김혜자는 한국영화 사상 가장 이상한 엄마 역할을 맡아서 유독 감정을 소모하는 연기가 많았는데, 봉 감독은 그가 감정을 쏟아낼 때마다 그를 다독이면서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전달했다. “16번 테이크와 지금 32번 테이크 중 하나를 고를게요.” 또 봉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스토리보드만 봐도 한눈에 어떤 장면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꼼꼼하게 스토리보드를 그린다. 시나리오는 지문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이처럼 그가 ‘봉테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디테일하게 준비하는 이유는 스태프와 배우들 간 명확한 의사 소통을 위해서다. 감독인 자신의 비전을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미리 준비한 촬영분 외에 만약을 대비한 여분의 장면을 찍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충분한 사전 준비를 했기 때문에 준비한 장면을 공들여 찍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습관 덕분에 그는 자신의 깐깐함을 만족시키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면서도 스태프들의 근로시간을 지킬 수 있었다. 봉 감독은 재능을 가진 인재를 발견해 칭찬하면서 그들에게 최고의 재능을 이끌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가 아카데미 시상식 등에서 다른 사람을 칭송하는 데 수상 소감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것만 봐도 그가 살아온 방식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장에서 봉 감독은 막내 스태프의 이름을 불러줄 정도로 모든 사람을 챙긴다. 함께 일한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시나리오 작가 시절부터 인연을 쌓은 정승혜 프로듀서가 2009년 암으로 별세했을 때 칸에 있던 봉 감독이 공항에서 캐리어를 끌고 곧장 장례식장으로 간 일화는 유명하다. 3️⃣불안과 공포를 이겨낸 창작력 대부분 작가들이 토로하듯 글을 쓰는 과정은 외로움과 맞닥뜨리는 시간이다. 자기 내면 속으로 깊게 침잠할수록 더 좋은 글이 나온다. 이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야만 비로소 영광을 누릴 자격이 주어진다. 봉 감독은 ‘기생충’으로 미국 작가조합, 영국 아카데미, 오스카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 때마다 그는 글쓰기가 얼마나 외로운 작업이었는지를 강조했는데, 아마도 고통스러웠던 지난 시간이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2015년 베를린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 강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궁극의 공포란 과연 내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이 드는 때일 겁니다.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는 잔혹한 순간과 맞닥뜨리는 것이죠. 하지만 궁극의 공포란 영원히 해소되지 않는 것이므로 그냥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4️⃣급부상한 한국 영화산업과 시의적절한 조우 준비된 천재는 그가 활약할 수 있는 시대를 만날 때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영화판에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제작, 배급, 투자, 마케팅 등 영역이 명확해졌고, 체계적 프로듀서 시스템이 도입됐다. 시내의 단관 위주 극장이 동네의 멀티플렉스로 바뀌며 영화 관람이 일상화됐다. 검열이 폐지되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자 능력 있는 인재들이 영화계로 몰려들었다. 영상교육 기관이 늘어났고, 칸•베니스 등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이 늘기 시작했다. 영국 영화 매거진 ‘스크린 데일리’는 오스카 작품상을 계기로 아시아 영화 산업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는데, 앞으로 아시아에서 다시 한 번 오스카 작품상을 받는다면 그곳은 또다시 한국 밖에 없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 어떤 아시아 국가의 영화 산업도 한국만큼의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봉준호가 재능의 꽃을 피울 수 있던 배경에는 때마침 르네상스 시기를 맞이한 한국영화 산업이 있었다.

봉준호는 어떻게 최고의 감독이 됐나 ... 4가지 이유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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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는 어떻게 최고의 감독이 됐나 ... 4가지 이유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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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5일 오전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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