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번 실천한 '작은 친절', 내 몸을 살린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동아일보
꼭 거액을 기부하거나 대단한 사연이 있어야만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사소한 선물이라도 받을 때보다 줄 수 있을 때 마음이 더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한다. 심지어 이때 느끼는 따뜻한 감정은 우리 몸에 좋기까지 하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이타적으로 행동하면 암, 치매,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친절과 질병 예방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신기하게도 사실이다. 몸과 마음이 기묘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몸에 좋다는 것은 그와 반대 상태인 스트레스가 몸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몸에 미치는 악영향은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염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 불안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과하게 활성화된다. 편도체는 불안과 관련한 신체의 신경망을 자극하고, 그러면 혈관에서는 염증이 생성된다. 몸속 염증 수치가 높다는 것은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아흐메드 타와콜 하버드대 의대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사람들은 염증 발생 빈도가 높았을 뿐 아니라 뇌중풍(뇌졸중), 심근경색 등 심혈관질환 발생 비율이 높았다. 연구진은 “관찰 기간을 더 길게 본다면 스트레스가 암이나 치매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마음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마음챙김’ 명상 앱을 이용하거나 심리 상담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보다 일상에서 좀 더 간편하게 시도해 볼 수 있는 마음 건강 챙기기 활동이 있다.
바로 남들에게 ‘친절하게 행동하기’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돕는 마음은 “내 삶은 꽤 괜찮다”는 긍정적인 정서를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는 든든한 느낌을 준다. 놀랍게도 이때 스트레스에 의해 활성화됐던 염증 반응이 약해진다.
우리 몸에는 염증을 유발하고 암이나 치매, 심혈관질환 등을 일으키는 유전자 53개가 있다. 이 무리를 통틀어 학술용어로 ‘역경에 대한 보존 전사 반응(CTRA)’을 일으키는 유전자라고 한다. 일종의 ‘악당 유전자’라고 이해하면 쉽다.
악당이 설치면 지구의 평화가 위협받듯, 악당 유전자가 활성화되면 몸에 염증은 늘어나고, 항바이러스 기능은 떨어진다. 이와 반대로 남들에게 친절하게 행동할 때는 긍정적 정서가 일어나고, 이는 악당 유전자의 활동을 감소시켜 건강을 지켜낸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캐서린 넬슨코피 미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성인 159명을 모집해 4주간 실험했다. 이들을 4개 그룹으로 나눠서 첫 번째 그룹에는 특정한 누군가에게 하루 3번 크고 작은 친절을 베풀라는 미션을 줬다.
예를 들면, 지인을 초대해서 음식 대접하기, 감사 편지 쓰기,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커피 사주기 등 본인이 원할 때, 원하는 행동을 해보라고 했다.
나머지 세 그룹에는 △자기에게만 좋은 행동하기(마사지 받기 등) △불특정 다수를 위한 좋은 일 하기(길가에 떨어진 쓰레기 줍기 등) △평소대로 살기(대조 그룹)로 나눴다.
마지막 대조 그룹을 제외하고 나머지 그룹에게는 첫 번째 그룹과 마찬가지로 하루 3번, 4주 동안 이 같은 행동을 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실험 전후로 혈액을 채취해 악당 유전자의 활성화 정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4주 동안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푼 그룹만 악당 유전자의 활성화 정도가 유일하게 감소했다. 다른 그룹은 전후 수치가 그대로이거나 아주 미세하게 증가했다.
그렇다면 나 자신에게 베푸는 친절과 관대함도 비슷한 효과를 낼까? 듣기 싫은 수업을 땡땡이치거나 열량 폭탄인 달콤한 디저트를 먹거나 망설임 없이 쇼핑하기 등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기분이 좋아져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연구 결과를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앞의 실험에서 마사지 받기 등 4주 동안 하루에 3번 자기만 즐거운 일을 한 그룹은 악당 유전자의 활동 정도가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 쾌락적 즐거움을 추구할수록 행복감의 지속 시간은 짧다고 한다. 죄책감이 동시에 일어나 즐거움을 상쇄해 버리는 탓이다.
반면, 남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들의 행복감은 꽤 오래간다. 넬슨코피 교수 연구진의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남에게 친절을 베푼 그룹은 실험이 끝나고 2주 후까지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났다. 다른 이들이 친절에 보답하는 선순환이 일어난 결과다.
반면 ‘수업 땡땡이’ 같은 쾌락을 추구한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행복감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연구진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남에게 친절을 베풀 때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행복감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인은 친절 자체라기보단 친절을 베푼 뒤 따라오는 “내 삶은 꽤 괜찮다”는 느낌이다. 또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고 느낌으로써 삶에 더 만족하게 된다. 다만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바로 자발성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선한 영향력을 끼칠 때 이 공식이 통한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비즈니스 친절’이나 형식적 봉사는 오히려 정신노동에 가깝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친절과 선행을 베풀면 행복감이 생겨나고, 스트레스에 의해 활성화됐던 질병 유발 유전자들의 활동이 약해진다. 꼭 거창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앞서 소개한 실험의 참여자들이 했던 일은 뒷사람을 위해 문 잡아 주기, 버스에서 자리 양보하기, 직장 동료에게 감사 메모 남기기 같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이런 작은 친절이 척박한 심리 상태를 회복시키고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니 놀랍지 않은가? 새해 다짐 목록에 ‘하루 세 번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기’를 추가해 보는 건 어떨까? 몸과 마음의 건강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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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4일 오전 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