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안부를 묻는 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안부를 가장한 잔소리를 듣는 처지에선 딱히 뭐라 답할 말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포털에 ‘명절 잔소리 대처법’을 검색하면 각종 방어 전략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애정과 관심이 담겼다 해도 민감한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애초 의도와 달리 서로에게 찜찜함만 남는 대화로 끝나기 쉽다.


그렇다고 아예 입 닫고, 귀 닫은 채로 서로 대화를 하지 않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어떻게 묻고, 어떻게 대화해야 오해 없이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이래라저래라하는 직설적인 조언은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나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구체적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도, 상대방 입장에선 “너 잘못하고 있다” “지금 넌 틀렸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서다.


그래서 조언할 땐 완곡한 표현을 택해야 한다. 이 미묘한 경계선을 지키지 않으면 도움을 주고도 “오지랖 넣어 두시라”고 비난받는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미국 컬럼비아대 니얼 볼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조언해줄 때 어떻게 말해야 효과적인지 연구했다. 대학생 참가자를 모집해 마약, 낙태 등 사회문제를 주제로 강연을 준비하라고 요청했다. 참가자들은 짧은 시간에 의견을 정리하고,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상황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연구팀은 이들에게 강연 준비에 조언하는 도우미를 한 명씩 붙여줬다. 참가자 절반에게는 직설적인 말투로 조언하는 도우미를, 나머지에는 같은 내용이라도 완곡하게 조언하는 도우미를 짝지어 줬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직설적 조언

“이런 말을 해드리고 싶네요. 좋은 강연을 하려면, 강연 맨 앞에 의견을 요약해서 말하고, 마지막에는 결론을 매우 강한 어조로 전달하세요.”


●완곡한 조언

“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겠네요. 보통 이런 경우에 좋은 강연을 하려면, 강연 맨 앞에 의견을 요약해서 말하고, 마지막에는 결론을 매우 강한 어조로 전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같은 내용을 전했지만, 뉘앙스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연구팀은 강연이 끝나고 나서 참가자들이 강연 준비 기간 동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측정했다.


그 결과 직설적 조언을 받은 사람들은 완곡한 조언을 받은 사람들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3배 더 상승했다. 직설적 조언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됐다고 지적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자존심 상한다고 느꼈고, 상대방이 쓸데없이 참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쯤에서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겠네?”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살 좀 빼라” “그래서 연애하겠냐?” 같은 비난에 가까운 말이 아니라, 정말로 도움이 되고 싶은 조언을 하는 상황에선 조금 다르다. 왜 그런지 살펴보기 위해 볼저 교수 연구팀의 또 다른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이번에는 배정되는 도우미 조건을 ●직설적 조언 ●완곡한 조언 ●아무 조언도 하지 않음 3가지로 나눴다. 그리고 각 조건에 속한 참가자들이 준비를 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느꼈는지 측정했다.


앞서 실험과 비슷하게 직설적 조언을 받은 그룹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느꼈다. 그런데 가장 스트레스를 적게 받은 그룹은 도우미가 침묵한 그룹이 아니라, 완곡한 조언을 받은 그룹이었다. 왜 그랬을까?


연구팀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말할 때 상대가 당신의 좋은 의도를 알아차리고, 이를 호의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진짜 상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면,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완곡한 방식으로 말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힘내” “잘될 거야” “툭툭 털어버려” 등의 말은 좋은 의도를 담고 있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공허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상대방이 실패 경험으로 자존감이 하락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잘될 거야” 같이 긍정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면, 자신의 힘든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라고 여기게 된다. “별것 아니다” “털어 버려라”라는 조언도 듣는 사람은 자신의 힘든 처지를 상대방이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망친 조카에게 “수많은 시험 중 하나일 뿐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라고 하기보단, “열심히 했을 텐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힘들었겠다. 고생하고 있다” 등 속상한 마음에 공감해 주는 화법이 더 효과적이다.


캐나다 워털루대 데니스 메리골드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힘든 상황에서 어떤 조언을 해줄 때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지 연구했다. 시험을 망치거나, 해고당하거나, 실연당한 실험 참가자에게 실험 파트너가 어떤 위로를 했을 때 가장 도움이 됐는지 살펴봤다.


일부 참가자에게는 “네 얘기를 들으니 나도 정말 화난다” “만약 내가 너의 입장이라도 정말 기분이 나빴을 거야” “그걸 감당하느라고 고생했겠구나”라며 힘든 감정에 공감하는 말을 건넸다.


나머지에는 “그게 그렇게 별일은 아니야” “다음에는 더 잘할 거야” “적어도 이번 일을 통해 너는 뭔가를 배웠어”라고 긍정적 측면만 강조하는 말을 했다.


그 결과, 힘든 경험으로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들은 긍정적 위로에 그다지 감흥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대화에 더 참여하려 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힘든 마음을 공감받은 사람들은 위로의 말을 건넨 실험 파트너와 관계가 돈독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이쯤 되면 ‘대화하는데 고려해야 할 게 왜 이리 많은가?’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대화는 결국 내 기분과 자기효능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상대가 내 관심을 감사해하고,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내가 도움이 됐구나”하는 생각으로 자기효능감이 올라간다. 그 반대 상황이라면 거절당하는 느낌으로 인해 기분이 나빠지고 자기효능감은 떨어진다. 이처럼 의도를 빗나간 대화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끝날 수 있다.


3가지만 기억하자. ●이래라저래라하는 직설적 말투보단 완곡하게 표현하자 ●조언할 땐 완곡한 표현이 좋지만, 자신 없다면 그냥 침묵하자 ●“힘내” “잘될 거야”란 말에 앞서 힘든 마음에 공감부터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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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5일 오전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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