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고해성사 - 의심하고 의심하자

지금 내가 맡고 있는 프로덕트는 MVP 단계이다. 전임자가 만들어두신 프로덕트는 고객들이 쉽게 온라인 광고를 하고 싶다는 니즈는 충족했다. 하지만 "돈 내고 써야 하는 제품인지" 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아있는 프로덕트였다. USP를 고민하다 보니, 지금 USP 를 고민할 때가 아님을 발견했다. 비즈니스를 관통하는 핵심 구조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상태였다. 호라라? 우선 그 나머지 반을 고치면서 USP를 더하고자 했다.


팀원들에게 왜 이렇게 기획했는지 설명했다. 팀원들이 "이해는 가는데, 그렇게 바꾸면 광고 초보자들에겐 어렵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들었다. 당연히 그런 질문이 나올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기능이 필요한지 답변을 준비해갔다. 어렵고 복잡한 온라인 광고니까 쉽게 풀어주기 위해 UI에서 많이 고민해보자고 했다.


아, 지금 생각해보면 이 단계에서 의심을 했어야 했다. '진짜 이 기능이 필요한 걸까? 이것 없이도 할 수있는 방법은 없나? 내가 이 기능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닐까?'


디자이너님이 디자인을 촤르륵 펼쳐주셨다. 피그마에 화면이 추가될 때마다, 그래서 디자이너님의 질문이 늘어날 때마다 그에 답하기 급급했다. 한편으론 디자인이 나오는 걸 보니 그럴싸해 보였다. 이정도면 안 어려울 것 같은데?

덧붙여 개발자님과 소통하면서도 '빨리' 결정해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래야 디자인이 끝나면 바로 개발이 들어갈 수 있을테니까.


디자인이 얼추 나오자 대표님이 등판하셨다. 대표님의 피드백이 한시간반 동안 이어졌다. 여러 피드백이 있었지만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였다.

"이 기능 반드시 필요해? 너무 어려운데?"


왜 이 기능이 필요한지를 설득하기 위해 자료조사를 했다. 솔직히 반성하자면, 뒤늦은 스터디였다. 기획 당시의 스터디는 구글과 메타 담당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형식이었다. 소스가 확실하니까 신뢰도 높은 정보라고 생각하고 이를 fact check 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터디를 하면 할수록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 1/4 수준이었음을 깨달았다. 3/4가 채워지자 '어라, 굳이 이 기획대로 할 필요는 없었네?'가 되었다.


현재 기획 방향이 '정석'이라면, 초보자를 위한 더 쉬운 일종의 '야매' 방향도 있었던 것이었다. 정석 방향은 미래의 확장성까지 고려한다면 맞았지만, 당장 타겟으로 하는 초보 광고자들에겐 어려울 수 있다. 야매 방향은 초보 광고자들에게 쉽다. 또한 이들이 정석을 이해해서 정석대로 할지가 의문이었다. 물론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차피 고쳐져야 하는 껍데기지만.


제프 베조스는 항상 2 way door 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은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모르니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2 way door 는 야매 방향이 가깝다. 쉬우면서도 확장할 여지는 있는 거니까.


애초부터 옵션이 하나였나 두개였나는 의사결정의 질적인 차원에서 다르다. 2가지 옵션이 있음을 알고 충분한 검토 후에 하나로 선택하는 것이 훨씬 질적으로 높은 퀄리티의 기획이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가. 이틀 간 기획리뷰를 준비하느라 자료조사를 하면서 자책을 정말 많이했다. 위가 너무 아팠다. 나는 기획 일을 사랑하지만,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제품과 팀을 끌고 가는 거면 어쩌지에 대한 불안감은 사랑하기 어려웠다.


여튼 울면서 자책하며 이런 상황의 원인을 고민했을 때 깨달은 건 "의심이 없었다". 정확히는 질적으로 퀄리티 높은 의심이 없었다.

'어려울까?' 수준의 의심을 가졌기 때문에 '화면 보니까 쉬운데?' 로 의심을 갈무리했다.

보다 근본에 대한 의심이어야 했다.


'이 기능 진짜 필요해? 이 옵션 말고 다른 방법은 없어? 진짜 이거 하나밖에 안된다고? 더 쉬운 방법은 없어? 왜 이 기능이 필요한데? 이 기능이 도입돼서 장단점은 뭔데?'


의심 없는 확신은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이길 수 없다. 의심을 불식시키려면 내가 더 의심해야 한다.


3개월 수습기간 통과로 나이브해졌다. 이번 프로젝트로 위염을 얻고 깨달음도 얻었다.


의심 또 의심!!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또는

이미 회원이신가요?

2024년 9월 24일 오전 12:07

댓글 0

    함께 읽은 게시물

    🍆컬리의 상품위원회 현장을 공개합니다

    ... 더 보기

    - YouTube

    youtu.be

     - YouTube

    토요일에 회사에서

    

    ... 더 보기



    Next.js 프로젝트를 AWS EKS에 배포하며 배운 것들

    ... 더 보기

    쿠버네티스를 활용한 클라우드 네이티브 데브옵스 | 존 어런들 - 교보문고

    product.kyobobook.co.kr

    쿠버네티스를 활용한 클라우드 네이티브 데브옵스 | 존 어런들 - 교보문고

     • 

    저장 5 • 조회 1,014


    < 감각의 나 vs 상상의 나, 누구를 믿어야 할까? >

    1. 자신을 두 존재로 생각하십시오.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