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
- 40년 기획자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서
강연안
안녕하세요!
저는 문구업이라는 외길을 40년 넘게 걸어오고 있는 신상봉입니다.
오늘 저는 “취향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정말 취향이 존중받고, 스스로의 취향을 무척 존중하기도 하는 시대입니다.
모두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만약 ‘취향’이라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라고 한다면 ‘뾰족한 것’이라고 부를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누군가 뾰족하다고 말하면 위험하다는 뜻이어서 기피대상이 됐습니다.
별로 달가운 말처럼 느껴지지 않았죠.
단순히 예민하다거나 불필요하게 날이 서 있다는 뜻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나만의 뾰족한 것’, ‘나만의 뾰족함’이 개성이자 무기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색깔을 부여하는 ‘나다움’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 ‘나다움’을 가진 사람, 기업을 어떻게 사람들이 알고 찾아 몰려듭니다.
무수한 ‘성공에 관한 조언’은 말합니다.
“남들과 달라져라”, “나만의 무기를 찾아라”라고요.
그런데 개성이란 단순히 ‘다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움’에서 오는 것입니다. 둘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고민해 봅시다.
일단 제가 발견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다름’에는 한계가 있지만, ‘다움’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계가 없다는 말은 정말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무한한 잠재력을 뜻하기 때문이죠. 어떠한 사람이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다면, 그만큼 위대한 파워를 지니기란 참 어려울 것입니다.
다름? = 한계가 존재함
다움! = 한계가 없음
그렇다면 ‘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제가 “문구업 외길을 오래 걸어왔다”라고 할 때 무척 특별해 보이지만 실제로 저 같은 사람이 많은 것과 같습니다. 얼핏 보면 다른 것 같지만, 같은 사람이 많죠. 즉, ‘다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구업 외길을 오래 걸어왔으”면서 동시에 “저다운” 사람은 저 하나뿐입니다. 그 ‘저다움’이 바로 제 문구 브랜드인 <자연과사람>의 제품에도 묻어나게 됩니다. 즉 나만의 무기란, 단순한 ‘다름’이 아닌 ‘다움’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입니다.
나음 ≠ 다움
때로 우리는 이렇게 착각하기도 합니다.
‘나음’이 ‘다움’이라고요.
그래서 남들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갖기 위해 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한번 돌아보세요. 꽤 긴 시간 타인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서 나가기 위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인식하기 전에, 단순히 나아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싸워온 시간이 과연 없었는지를요. 너무 많았던 건 아니었는지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나음’이 아닌 ‘다움’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며,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다움’은 ‘나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왜냐하면 ‘나음’에는 나를 갉아먹는 비교 대상이 존재하지만, ‘다움’이란 그 존재 자체의 본연적인 성질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나음’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어떤 분야에나 있습니다. 그때마다 이기려고 하니, 동력이 고갈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그때까지의 ‘나음’의 동력이 대부분 정말 중요한 ‘나다움’을 무너뜨리는 방식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나음’은 ‘다움’을 무너뜨립니다. ‘나음’의 기준이 타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음’을 추구하다 보면 ‘다움’이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나다움’이 취향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었습니다.
‘나다움? 너무 쉬운 거 아닌가?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나다워지기까지는 세기 힘들 정도의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즉 실패라는 과정을 여기서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쉽거나 빨리 해결되는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실패는 결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도 사실입니다.
실패는 매일 조금씩 누구나 겪는 일이며, 그로 인해 나다움을 찾아갈 방법을 또 하나 획득하게 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다움’을 발견해 확립하는 일은 왜 어려운 일일까요?
철학 ⊂ 다움
수많은 고민과 실패도 필요하지만, ‘다움’이라는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만의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철학 없는 ‘다움’은 없습니다.
철학이 없는 개성 또한 만들어진 카피일 뿐이죠.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나보다 앞서 개성을 실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접하며, 사고방식, 습관마저 다 따라 하려는 또 하나의 습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개성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모방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하나의 복제버전일 뿐이죠.
제 생각에 지금은 벤치마킹이 자아를 실현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시대입니다. 지식보다는 지혜, 혁신보다는 창조가 필요한 때로, 다른 사람의 방식을 학습하기보다 나 자신에게 잘 어울리고 맞는 방식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새롭다’, ‘누구누구답다’를 확립했다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이 나올 때가 진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가 왜 저 생각을 못 했지?”라는 말 말입니다.
감탄에 가까운 이 말이 저는 지금 이 시대에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제품을 기획할 때 당연한 생각, 기존의 질서를 거부합니다.
비디오테이프가 일반적으로 상용되던 90년대, 가벼운 DVD를 오프라인 매장이 아닌 우편을 통해 순차적으로 대여해 주는 모델을 구상한 <넷플릭스>처럼요. 꾸준한 발상의 전환이 2007년 스트리밍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면서, 지금 디지털 스트리밍을 기반으로 한 ‘구독경제’의 일상화를 정착시켰죠.
저는 특히 “이건 어쩔 수 없어”나 “원래부터 그래!”라는 말을 제일 싫어하고, 그 고정관념을 바꾸어 내기를 즐깁니다.
관련해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릴까요?
저희 회사가 노트를 기획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대부분의 노트가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공책의 내지 라인 간격은 보통 7mm 아니면 8mm였습니다.
물론 소비자가 그것까지 알 수는 없겠지만요.
하지만 기획자인 제 눈에는 보였습니다.
아마 바로 이런 부분이 너무 많은 제작자와 소비자가 당연함에 갇혀 문제시하지 못하는 부분들이겠죠?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라는 포악한 함정이죠.
저는 다르게 생각해 봤습니다.
- ‘내지를 표지로 내보내자!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해 내지 간격을 다양하게 만들자.’
그래서 노트의 줄 간격을 5mm부터 10mm까지 다양화했고, 모눈 타입도 다양화해서 사람이 지닌 저마다의 글씨 크기와 취향에 맞게 만들어 최종 사용자인 소비자가 직접 고르도록 만들었습니다.
반응이 어땠을까요?
저마다의 취향을 존중해 주자 당연히 반응도 좋았고, 국내 최대 문구 업체에서 카피까지 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생산자 관점에서 만들기 쉽고 편한 방식을 고민 없이 택하는 것이 아니라 취향을 지닌 소비자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가가 만든 것이 주효했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아무 곳이나 가까운 문구 매장에 가보면 보이는 스프링 노트는 거의 저희 디자인에서 변형된 것들입니다. 속은 상하지만 노트 디자인의 흐름을 바꾸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 시작점을 생각해 보면 결국 당연함을 거부함으로써 나올 수 있던 기획이었습니다.
즉, ‘취향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무언가 달라져야 함을 알 수 있는데요. 중요한 건 무작정 달라지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방식’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취향의 욕구’를 읽어야 하는 거죠.
단순히 ‘Different’를 추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순히 ‘다름’에만 집착한다면 이상한 결과물만 나오겠죠? ‘Different’를 기본으로, 거기에 ‘Better’, 즉 나음을 더해야 합니다. 그게 곧 ‘다움’입니다.
그러니 ‘다움’이란 단순히 태어난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굉장히 복합적인 개념입니다.
이 복합성을 만드는 것은 자신만의 ‘철학’에서 나오는 ‘디테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요소들이 더해져야만 확실한 ‘다움’에 이르는 것입니다. 공식으로 살펴볼까요?
다름(Different)+나음(Better) = 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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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철학 = 다움
‘다름’은 디테일에서 나옵니다. ‘나음’은 나만의 철학에서 탄생하죠. 세상과 사물에 대해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는 일이 곧 그 사람이 가진 ‘철학’이니까요. 결국 다른 사람은 추구하거나 알아채지 못했던 ‘디테일’한 부분을 포착해 ‘나만의 철학’으로 보강하는 것이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더 좋은 브랜드로 거듭나는 해답입니다.
여기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디테일’입니다.
저는 스티브 잡스가 어릴 때 겪은 나무 팻말 페인트 에피소드가 이 ‘철학적 디테일’을 잘 상징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잡스가 팻말의 끝부분은 땅에 묻히는 부분이라 페인트칠을 하지 않으려고 하자 잡스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보이지 않는 곳이 더 중요하다”고요.
사실 땅에 묻히는 부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페인트칠이 불필요하다고 느끼기도 했겠지만, 대부분 칠하지 않으니까 생각하지 못했던 거겠죠. 아마 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고 감추어지는 부분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추후 스티브 잡스가 이끈 <애플>의 집요함은 잡스가 자라며 접한 이러한 에피소드들 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보통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넘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보이지 않는 지점의 필요를 알아채 만들어 내는 그 아주 작은 차이가 정말 큰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 시선이 곧 ‘자신의 철학’입니다.
자기다움 = 나만의 철학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관성에 젖어 있지는 않은지, 다른 사람들이 주로 택하는 것, 이미 편하게 몸에 익은 방식으로만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합니다. 어쩌면 모든 자기 철학의 근본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생각을 속이지 말고 의문을 갖고 끝없이 자신다움을 찾아가다 보면 작은 나만의 디테일이 쌓이고 쌓여 ‘자기다움’이 완성됩니다.
결국 취향 역시 단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다움을 찾아가며 겪는 수많은 실패 후에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만들어져 발현되는 것입니다. 어렵게 획득한 철학이나 취향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산됩니다. 물론 취향만 잘 찾아냈다고 존중받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복잡하니까요!
즉,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