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은 사냥하고, 여성은 과일과 버섯을 딴다. 원시사회를 그린 영화나 책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성(性) 분업 가설이 잘못된 신화로 밝혀졌다. 미국 워싱턴대 인류학과 카라 월-셰플러(Cara Wall-Scheffler) 교수 연구진은 지난 7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전 세계 수렵채집사회 10곳 중 8곳에서 여성도 사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조사한 63개 사회 중 50개 사회에서 여성이 사냥했다는 증거를 발견했으며, 그중 87%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사냥이 식량을 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문화권에서는 여성이 100% 사냥에 참여했다.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는 최근 “워싱턴대의 논문은 2019년 제가 대학원생과 같이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나온 책에 실은 논문을 읽은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앞서 국내 언론에도 성(性) 분업 가설이 틀렸다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 그때 인터넷에 ‘남자는 사냥하고 여자는 채집했다는 기본 상식도 모르는 X이 무슨 학자’라고 비난하는 댓글이 올랐다. 이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하도 화가 나서 열심히 그 주제로 글을 썼는데 이제 결실을 보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1️⃣최근 여성 사냥꾼을 밝힌 논문처럼 기존의 관념을 이렇게 뒤집는 결과들이 계속 나오는 것 같다. 🅰️정설이 역동적으로 항상 바뀌고 있다. 지난 10년은 지적 완고함이 깨지는 시기였다. 예전 같으면 미친 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상한 소리로 치부됐을 주장이 지금은 한 번 더 생각을 해보는 분위기이다. 2️⃣지난 6월에는 머리는 침팬지 크기지만 손과 발은 오늘날 사람과 흡사한 고인류인 호모 날레디(Homo naledi)가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나 사촌 격인 네안데르탈인보다 최소 16만 년 전에 무덤을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매장은 이승에 대한 개념을 가져야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두뇌 용적이 1400cc인 네안데르탈인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고차원적인 일을 400~600cc에 불과한 고인류가 했다니 충격이었다. 물론 그 주장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그렇지만 많은 학자가 예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가설들을 더 많이 연구하는 변화를 반영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3️⃣갑자기 전에 없던 발굴 결과물들이 엄청 쏟아진 게 아니라는 말인가. 🅰️발굴은 전처럼 꾸준히 하고 있고, 결과를 새롭게 보는 시각들이 좀 더 자유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예전에 묻지 않던 질문을 던지고 발굴을 하는 흐름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의 구분이 사라진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4️⃣그렇다면 고인류학에서 최근 가장 급격하게 생각이 바뀐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두뇌 크기이다. 정설은 이렇다. ‘사람만이 큰 두뇌를 가지고 있다. 사람만이 동굴벽화를 그리고 추상적 개념을 안다. 따라서 큰 두뇌가 있어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인간이 포함된 호모 속(屬)이 나오기 전에 출현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도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5️⃣교과서에서는 ‘도구의 인간’이란 뜻의 호모 하빌리스부터 도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학자 중에는 이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진정한 호모 하빌리스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도구를 만드는 데 반드시 큰 머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도 호모 속보다 작기는 하지만 두뇌 용량이 계속 커졌다. 절대적 크기보다 변화가 중요한 셈이다. 6️⃣교과서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시작해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을 거쳐 마지막으로 가장 뛰어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고 배웠다. 지금은 이런 단선적 진화가 아니라고 한다. 🅰️20세기 중반까지 그랬다. 후반에는 나뭇가지처럼 뻗어가는 진화도를 그렸다. 공통조상에서 두 개 이상의 자손으로 진화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다시 새로운 진화도가 나왔다. 가지가 얽히듯, 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도 유전자 교환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7️⃣ 단선적이고 일방통행식인 인류 진화는 없었다는 말인가. 🅰️인류의 진화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앞으로 행진하는 모습도, 곁가지와 본가지로 갈라져서 울창한 아름드리나무가 되는 모습도 아니다.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고 다시 갈라지는 강줄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8️⃣최근 아시아 고인류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고 들었다. 🅰️2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출현하고 70만년 전부터 아시아로 퍼졌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아시아에서 나온 화석의 연대가 그랬다. 그런데 최근 210만년 전 고인류 화석이 중국에서 나왔다. 9️⃣아프리카와 중국 양쪽에서 인류가 기원했다는 말인가. 🅰️호모 속이 아프리카에서 나와 빠르게 아시아로 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중국에 가서 따로 호모 속으로 진화했을 수도 있다. 중국의 고인류 연구가 발전하고 국제 학계와 활발히 교류하면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밝혀질 수 있다. 🔟동남아시아도 인류 진화에서 중요한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류가 이주할 때는 자원을 얻기 쉬운 해안선을 따라갔을 것이다. 그 점에서 동북아시아인의 기원도 동남아시아로 볼 수 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과거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과 같은 인종주의이다. 사실 1000년을 넘으면 조상의 의미는 없다. 부모의 부모를 다 따지면 20대째 조상은 104만 명이 훌쩍 넘는다.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조상은 5000년 전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또한 인간이 다른 영장류보다 더 특별한 것도 아니다. 예전엔 영장류 공통조상에서 고릴라가 먼저 갈라지고 다음에 침팬지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인간이 진화했다고 봤다. 지금은 인간이 먼저 갈라지고, 그 뒤 침팬지에서 보노보가 나왔다고 본다. 침팬지로선 우리가 더 원시적인 영장류인 셈이다.

[이영완의 디알로고] "인류 진화는 일방통행보다 모였다 갈라지는 강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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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완의 디알로고] "인류 진화는 일방통행보다 모였다 갈라지는 강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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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7일 오후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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