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독서모임의 이번 읽을거리는 이미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진 김지수 기자님의 ⟪위대한 대화⟫였습니다. 각자가 읽어도 충분히 좋을 만한 이 책을 굳이 모임의 읽을거리로 선정한 것은 이번 달 모임 키워드가 바로 '기획자의 언어'였기 때문이죠. 멤버들과 꼭 한 번 다뤄보고자 꽤 아껴놓은 주제였는데 이번 기회를 빌어 테이블에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02. ⟪위대한 대화⟫에는 작고하신 이어령 교수님을 비롯해 프랑스 작가 파스칼 뷔르크네르,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 패션디자이너이자 유튜버 밀라논나,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 그리고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에 이르기까지 18명의 인터뷰이가 각자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의 언어를 통해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언어를 찾아보는 것이었죠.
03. 4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언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본 것도 처음이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멤버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한 생각과 뉘앙스와 감정과 경험이 너무도 생생하게 공유되었다는 겁니다. 때로는 낯설거나 어렵다고 느껴질 질문들도 발제문에 녹아 있어서 저 스스로도 좀 걱정을 했지만 우려와는 달리 좋은 언어에 대한 열망과 욕심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04. 모임 막바지에 저는 제가 자주 쓰는 좋은 언어 만들기(?)에 대한 경험이자 실천 방법을 하나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방법에 '질문 설계자들'이라는 이름을 붙여봤죠.
방식은 간단합니다.
1) 우선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발견되면 저는 흔히들 하시는 것처럼 스크랩을 해놓습니다. (이건 정말 많이들 하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2) 대신 그 문장을 답변이라고 생각하고 이번엔 그에 해당하는 질문을 한 번 만들어 보죠.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저 대답이 나올 수 있는가를 고민해 보는 겁니다.
3) 적절한 질문을 정했으면 이번엔 다시 답변을 읽어봅니다. 그럼 분명히 그 답변에서 내가 고치거나 첨언해 보고 싶은 부분이 생깁니다. 그땐 또 수정 작업에 들어가죠.
05. 굳이 이런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이유가 의아하실 수 있겠으나, 저는 이렇게 질문과 답변을 찾고 수정하는 과정 속에 각자의 언어가 더 선명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누군가의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저런 질문에 뭐라고 답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건 자주 하는 일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문장에 적절한 질문을 달아주는 건 꽤 신박한 일이거든요. 하지만 이 작업이야말로 좋은 대답을 뛰어넘는 좋은 질문을 발견하게 해주는 습관이고 이게 우리의 언어를 여는 첫 관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06. 여기에 한 가지 팁을 보태자면 답변을 수정할 때 '내가 좋아하는 언어를 가진 사람'의 화법을 빌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 대답했을까? 어떤 단어를 쓰며 어떤 표현을 추구했을까? 이 질문에 동의했을까 그러지 않았을까?' 등을 고민해 보면서 내 질문에 답해줄 페르소나를 찾고, 그 페르소나대로 한번 답변을 이어가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참고로 저도 이번 모임에서 제가 찾은 질문에 이어령 교수님과 밀라논나 선생님의 화법을 빌려 새로운 답변을 소개해 드렸죠.)
07. 이렇게 하면 첫 시작은 누군가의 언어를 빌려서 했지만 그 과정에서의 수정과 완성은 결국 내 언어로 마무리 지어집니다. 언어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고, 타인의 언어와 내 언어 사이의 틈을 매우며 공감의 질을 높여간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꽤나 쉬운 방법으로 쏠쏠한 훈련을 하는 셈이죠.
08. 그러니 여러분도 '나만의 언어를 찾아야지'라는 담대하고 거창한 목표보다 내 언어를 개발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실천법들을 몸에 붙여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런 작업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특정한 시점에 이르러서는 그게 발화점처럼 화르륵 불씨를 지펴주더라고요. 그렇게 불붙은 언어는 나의 페르소나를 더 극적이게도 만들어주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도 내 페르소나를 옮겨붙게 해주는 힘이 있으니까요, 돌과 돌을 부딪히며 마찰을 내듯 나의 언어와 다른 사람의 언어를 부딪혀가며 좋은 언어의 불씨를 살려가는 시도를 해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