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온라인몰의 비밀: 한촌설렁탕엔 있고 더본코리아엔 없는 것
더스쿠프
요즘 온라인에서 자주 보이는 러셀 브런슨의 <마케팅 설계자>를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나의 이 퍼널 회의주의를 다듬어 보게 된다. 이 책은 퍼널의 중요성을 엄청 강조하는 책인데, 볼만한게 있나 해서 읽고 나니 '오래된 미래'라는 느낌이다. 퍼널은 정말 그렇게까지 중요할까? 아래는 이 주제에 관련해서 2020년 전 적어놨던 글인데, 요즘 왠지 더 적실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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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퍼널별 분석을 해야 한다. 온사이트 마케팅을 해야 한다. 애드테크를 잘 활용해야 한다...이런 말을 정말 많이 들었지만 거의 3년 정도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보고, 또 다시 적용하려고 보니 알겠다. 역시 지피지기가 제일 중요하구나. 모두의 이론이 내 먹고 살 길은 아니구나. 내가 지금 일하는 회사가 어떤 속도와 어떤 구조로 제품을 파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느냐가 항상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마케팅에서 흔히들 퍼널 분석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근데 퍼널 분석은 만능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투자의 성격에 가깝다.
2.예를 들면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물건을 파는 방식은 1.광고 콘텐츠에서 이미 설득이 끝난 상태에서 2.상세페이지에서 최단시간내에 구매를 유도하고 3.이를 네이버 페이 등으로 빠르게 결정하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인지->유입->고려->결정의 단계가 정말 순식간에 이뤄진다. 오히려 퍼널에 투자하는 고민의 양을 콘텐츠와 제품 기획에서 더 많이 하고 있는 셈이고 상위에서 중위 퍼널의 역할을 콘텐츠가 가져갔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요즘은 조금씩 양상이 바뀌는 추세이긴 하다.
3.이런 구조에서 온사이트 마케팅 툴을 활용하거나 퍼널 분석을 통해 개선을 하려고 하면 매우....매우 난관에 빠지기 쉽다. 장바구니에 체류하고 있는 고객 대상으로 장바구니 이탈율을 개선하기 위해 액션을 해보면 2일만에 깨닫게 된다. 이 구조에서는 장바구니에 들어온 것 자체가 이미 구매결정을 결심하고 있는 단계네? 상세페이지에서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 온사이트 툴을 활용 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이거는 깜짝혜택이나 팝업이나 메세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네? 비회원에게 어떤 혜택을 줘서 전환율을 높이려고 하면 공포의 N페이가 모든 것을 가로막는다.
4.재구매율을 높이기 위해서 액션을 취해보면 절실하게 다가온다. 매력적 상품이나 매력적 물량 없이 재구매율 개선은 없다는 것을. 리턴배너 같은 툴은 전체 트래픽이 커야만 이득이 나는 구조라는 것도 깨닫게 되고, 기계적인 DM 툴의 사용은 마케터의 리소스를 줄이는 대신 CS 인입을 늘리고 이미지를 조금씩 깎아먹을 뿐이라는 사실도 금방 알게 된다. 사람들은 우리를 소규모 가게 사장님으로 인지하지 그런 영혼없는 문자를 보내도 되는 대규모 백화점으로 보지 않으니까.
5.이전에도 그로스해킹 관련한 글에 썼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커머스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방법론들이 1.상품의 SKU수가 엄청나게 많은 오픈마켓 형태 2.빠른 테스트와 개선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상품군 등에만 적용 가능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한 퍼널구조가 유효하려면 상품의 수가 정말정말 많거나, 사용자가 각 단계에서 지불할 수 있는 리소스 형태가 다양하고, 다음 단계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관심-다운로드-지불과 같은)형태여야 한다. 물론 어쨌든 그 모든 이야기들의 핵심은 하나다. 계속 관찰하고 실험해보고 개선하라.
6.근데 그 관찰-실험-개선의 싸이클이 어느정도 진행되면 그때부터는 그래서 우리는 어떤 구조인데?를 파악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 다음부터는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고. 우리 구조에 안맞는 건 그게 에어비엔비가 아니라 아마존에서 한 방식이라고 해도 갖다 버리고, 맞는 거라면 어느 별세계 장사꾼이 하는 방식이라고 해도 가져와야 하는 것이겠다.
7.때문에 상품과 트래픽이 몇 안되는 브랜드의 마케터가 해야할 일은, 오히려 그런 핫한 방법론의 적용보다는 상품의 매력적인 메세지, 상세페이지의 유기적 구성, 상품기획에의 적극적 참여와 실제 물건을 사주는 손님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에 있다는 생각이 갈수록 강해진다.
이 사람들은 재방문 2회고 체류시간이 평균 20초고...이런 이해 말고. 이 제품을 사는 과정에서 실제 느꼈을 불편함은 무엇이었고, 이 제품을 사게 된 배경은 뭐였으며, 우리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갖고있는지 등등. 사실 요즘 온사이트 마케팅에 꽂혀서 다시 돌려보고 있는데 영 안나와서 답답한 마음에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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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 글을 쓸때도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이 일을 할 때마다 의아한 두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번째, 의외로 판매자들이 구매자처럼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가 물건을 살때 정말 퍼널적으로 사고하고 물건을 사는가? 한다면 얼마짜리에서부터? 언제 그러는가? 나는 대부분의 소비는 그런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구매는 이미 유입 전에 반 이상 설득됐어야 한다.플랫폼이나 서비스에서 일을 했던 많은 마케터들이 커머스 쪽으로 와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퍼널적 사고'의 부분이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모든 방법론은 그것이 나타난 구체적인 역사성(맥락과 배경)이 존재한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는 방법론이란 없다. 특정 방법의 유행에는 배경이 있는 것이다. 커머스 업체들이 니즈를 발명해 상품을 기획하듯, 퍼널 또한 마케터/애드테크가 광고상품을 팔기 위해 만들어낸 기획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2018-2019년에 구매전환 광고가 시장을 휩쓸고, 광고비가 비싸지고 신규브랜드 런칭 허들이 높아지니 CRM이 인기를 끌었다.
나는 퍼널,CRM 그리고 브랜딩이란 개념도 조만간 마찬가지의 길을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특정 직군들이 기획해낸 개념이기도 하고, 구현 가능한 조건이 제한적임에도 특정 시대의 수혜를 입어 대중적 개념이 됐다. 내가 몸담고 있는 시장도 마찬가지고. 사기라는 건 아니다. 모든 개념은 다 일정 수준의 진리값을 담고 있지만 그보다 맥락의 영향이 강하다. 그것이 전제하는 조건을 명확하게 체크하고, 적용에 지나친 낙관을 갖지 말자는 정도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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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30일 오후 12:05
동훈님, 제가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물음과 나름의 고민, 나름의 결론을 너무나 닮은듯 그러나 더 명쾌하게 풀어주셔서 점심시간에 밥도 안 먹으러 가고 정독했습니다. 고객이 몇시 몇분 몇초에 결제를 더 많이 할지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고객이 왜 우리 브랜드를 찾아와주었고 어떤 연유로 여러번 재구매까지 하기에 이르렀는지 맥락을 짚어내는 일도 또한 중요해보입니다. 북마크 하고 두고두고 읽어보고 싶어요! 지혜를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따스한 가을날 되세요.
@김호랑 에고 졸문 읽어주시고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선현들과 동료들의 고민에 하나 더 얹어본 것인데 같은 고민 하는 분들이 있다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네요 ☺️
관심 있는 주제라 정독했습니다. 저도 말씀에 동의합니다. 결국에는 본질인데 상품이나 상세페이지 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FAN이라는것도 그래서 중요하구요. 결국 더 넓게 생각해서 온라인 광고도 그래서? 죽지 않을거라고 보는 입장인데.. 결국 모든 도와주는 역할이지. 제일 중요한 것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당
@박재영 맞습니다. 저도 비슷한 맥락에서 온라인 마케팅이나 광고가 사라지진 않을 거라고 보고, 사람의 역할도 쉽게 대체는 안될 것 같아요 🥹 물론 본질만 갖추면 냅둔다고 잘 되는 건 아니지만 상품이 좋으면 퍼널이니 뭐니 하는 기술적 고민 없이도 판매의 많은 부분이 해결이 되는 것도 사실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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