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뭔가 특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다움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남들과는 ‘반드시’ 달라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게 나다움이지 다른 사람과 같다면 그것은 나다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다움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다움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날, 취업, 경력 시장, AI의 확산에 따라 각 개인의 차별화된 포인트를 강요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차별화된 경쟁력과 나다움이 혼재되어 나다움이 오히려 변질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축구 대회에도 나갈 예정이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니 축구에 대한 나의 시간과 열정을 쏟고 축구를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게 나의 나다움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축구를 좋아할 수 있다. 대회에도 나갈 수 있다. 그건 그 사람의 나다움이다. 이렇게 나다움이 겹칠 경우, 예전의 나의 생각대로라면 그 누구에게도 나다움이라고 적용할 수 없다. 그런데 이제는 이게 나다움이라는 것을 배웠다.
자꾸 특별한 것을 생각해내려고 한다. 무조건 나는 저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한 것을 생각해내고 꼭 달라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 역시 나다움이다. 그 사람은 그런 가치관을 갖고 있다면 그런 것이다.
결론은 결국 그 모든 것들을 나다움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그의 생각이라면 그것을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한 순간, 그 사람만의 나다움을 방해하는 것이고 이것이 과도하면 오히려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나, 내가 생각하는 그 것 그 자체를 받아 들이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나다움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실천’에 방점을 찍고 싶다. 그냥 나를 인지하는 것으로 끝낸다면 진정한 나다움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 진정으로 나다움이 완성된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데 축구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이것은 진정 나다움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행동하고 나타냄으로써 인간의 본질적인 나다움을 해소하고 비로소 이게 나다운 것임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경쟁 사회가 우리의 본 모습을 잊게 만들고 있다. 세상이 너무 치열하고 경제가 어려워서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살아가다 보니 어쩔 수 없게 되어버렸다. 우리의 본 모습을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란다. 페르소나, 관계의 가면을 쓰지 않고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남들 눈치 보지 않고 그렇게 살아내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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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5일 오후 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