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자존감보다는 겸손
세계일보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워낙 널리 알려져서 식상한 느낌도 들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여전히 중요하다. 자아존중감은 ‘객관적 이유와 상관없이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인식’에 기반한다.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충만하면 “자존감이 높다”라고 말한다.
10대의 자존감은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정상이고, 2-30대가 되어도 근거 없는 자기 비하와 비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게 마련이다. 중장년은 자존감이 높을까? 그렇지도 않다.
나이가 들어도 심리적 약점이나 결핍에 대한 인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존감을 갉아먹는 결함이라고 여겼던 성향이 떼어낼 수 없는 자기 정체성의 일부라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게 될 뿐이다. 자기 모습에 익숙해지고 덜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자존감도 이렇게 변해간다.
의지력과 자존감, 동기부여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결과들을 발표해 온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자존감만 키워주려는 훈련들이 과연 실제로 얼마나 유익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가졌다.
이와 관련된 여러 실험들을 종합 분석한 뒤,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자존감은 잊고 자기 조절과 절제에 더 집중하라.”
자존감 함양이 마치 심리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양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을 덜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그는 비판한다.
불안정한 자아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자존감만 높이려다 자아도취에 빠지면 공격적으로 변하기 쉽다. 자기 의사에 반하는 의견을 듣거나 사소한 불편에도 발끈한다. 자존감 키우기에 열중하다 보니 자존심이 조금만 상해도 참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존감 이전에 절제와 겸양을 더 익혔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심리학의 연구 주제도 근래에는 겸손이라는 덕성에 더 주목한다. 겸손한 이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학습, 문제해결, 의사결정에서 더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식을 습득하는 과제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 예측할 때도 ‘겸손한 품성을 가졌는가’가 지능지수보다 더 정확한 지표라는 걸 확인한 연구 결과도 있다. 겸손하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계속 공부하려고 노력하므로 결국에는 타고난 재능을 뛰어넘어 더 높은 성취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지도자가 겸손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따르는 사람들이 그에게 더 많은 신뢰를 느낀다. 단순히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한다. 아랫사람들이 제 스스로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이끄는 지도자의 품성도 다름 아닌 겸손이다.
경영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사업가적 의지에 인간적인 겸손함이 결합되어야만, 기업가가 최고 수준의 리더십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기 약점과 한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일수록 가벼운 우울을 느끼고 자존감이 낮다고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다. 마음에 대해 겸손하게 배워갈수록 인간은 누구나 근원적인 부족함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아를 존중하는 힘은 상담이나 훈련을 받아도 쉽게 솟아나지 않는다. 심리 서적 읽고 유튜브 강의 듣고 세워 올린 자존감은 역경이 닥치면 금방 허물어진다. 힘과 용기를 모아 자기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부산물이 진짜 자존감이다. 자존감만 키워보겠다고 애쓰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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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6일 오후 2:30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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