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이유

에드워드 요던이 출간한 책 ‘death march project’를 처음 접한 것은 2001년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2005년에 그 책의 번역본을 출간했는데 ‘death march project’를  어떤 용어로 번역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고민 끝에 책 제목은 ‘죽음의 행진 프로젝트’로 직역을 했고 본문에서는 ‘문제 프로젝트’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지옥 같은’ 또는 ‘끔찍한’ 프로젝트가 보다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지옥 같은 프로젝트는 고객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형 SI 프로젝트, 상품출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판교의 밤을 밝히는 프로젝트, 성공의 가능성이 낮지만 회사의 사활을 건 프로젝트, 저 예산의 이벤트나 영화제작 프로젝트, 혹독한 환경에서의 건설 프로젝트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업종의 프로젝트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악명 높은 프로젝트들은 ‘실미도 프로젝트’와 같은 별명을 남기기도 합니다. 착수부터 지옥 같은 프로젝트도 있지만, 정상적인 프로젝트가 지옥 같은 프로젝트로 변하기도 합니다.  

 

프로젝트 관리자가 지옥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조직 내 개인의 성공을 위해 

일반적인 프로젝트는 잘 끝내도 티가 나지 않습니다. 반면 경영층이 힘들다고 인정하는 프로젝트를 잘 끝내면 급여인상, 승진과 같은 보상이 따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유 때문에 지옥 같은 프로젝트를 맡는다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전에 보상에 대한 명시적 또는 암묵적인 약속을 받아 두는 것이 좋습니다. 


• 경영층의 압박 때문에 

본인은 하기 싫지만 경영층의 압박에 못 이겨 지옥 같은 프로젝트를 맡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비 자발적으로 지옥 같은 프로젝트를 맡은 프로젝트 관리자는 희생양이 되기 쉽습니다. 


•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충만하여 프로젝트의 복잡도, 난이도, 규모를 과소평가하면 쉽게 할 일을 힘들게 만듭니다. 


• 개인의 성취욕구 때문에 

남들이 어려워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싶은 개인적인 성취욕구 때문에 프로젝트를 맡을 수도 있습니다. 프로젝트 관리자의 이력에 남을만한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남들이 기피하는 프로젝트에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지옥 같은 프로젝트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미션 임파서벌 프로젝트(변경할 수 없는 중요한 납기가 있는 경우)


일정이 정해진 박람회에 신상품을 출시하는 프로젝트, 경쟁상품의 출시일 보다 앞당겨 출시하는 것이 목표인 프로젝트, 정부의 컴플라이언스 때문에 납기가 정해진 프로젝트는 일정지연이 불가능합니다.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두 가지 경우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추석, 구정과 같은 연휴 뒤에만 오픈이 가능한 금융의 차세대 프로젝트와 같이 일정변경이 불가능하지 않지만 일정지연에 제약이 많은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납기의 중요한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규모가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프로젝트 규모나 복잡도를 과소추정 하거나, 프로젝트 관리를 잘못하면, 달성하기 힘든 일정준수를 위해 지옥 같은 프로젝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미션 임파서벌 프로젝트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프로젝트 업무의 난이도가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영화 속의 톰 크루즈와 같은 프로젝트 관리자가 아니라도 프로젝트 납기는 지킬 수 있습니다. 


미션 임파서벌 프로젝트는 영화와 달리 일을 방해하는 악당이 없습니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납기준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또한 프로젝트 완성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납기준수를 위해 일정 수준의 범위나 품질을 희생하는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은 힘들어도 프로젝트를 끝난 후 프로젝트 관리자나 팀원은 보람을 느낄 수 있고 그 프로젝트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또한 그 유명한 ‘00 프로젝트’의 프로젝트 관리자였다는 것은 본인의 커리어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미션 임파서블 프로젝트의 성취감에 중독되어 그러한 프로젝트만 찾는 프로젝트 관리자도 가끔씩 볼 수 있습니다. 


가짜 프로젝트 (납기가 중요하지 않는 경우)


형식적으로 프로젝트의 납기준수는 중요하지만, 비즈니스 관점에서 프로젝트 결과물이 납기일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의 업무도 그렇습니다. 실무자의 “언제까지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빠를수록 좋습니다.(ASAP)”라고 대답하는 리더가 많은데 정작 명확한 이유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조직이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하고, 그것도 빨리 해야 한다는 것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납기가 중요하지 않는 프로젝트의 탄생뒤에는 개인 또는 특정부서의 이기적인 욕심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조직의 생산성을 향상한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실 사용자가 환영하지 않는 프로젝트가 많습니다. 개인이 승진하기 위해, 특정 부서가 조직 내에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하지 않아도 되는 프로젝트를 하는 겁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가짜 프로젝트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가짜 프로젝트에서는 최신 트렌드와 신기술을 활용한 그럴싸한 결과물이 중요합니다. 최악은 그러한 프로젝트를 견제하는 조직이 있을 경우입니다. 물론 대놓고 프로젝트를 반대하지는 않고 지능적으로 프로젝트가 안되게 방해합니다. 


미션 임파서벌 프로젝트의 납기와 가치에 대한 정당성은 명확했습니다. 다만 일이 힘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짜 프로젝트는 일에 대한 가치도 없고, 특정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프로젝트 팀원들의 사명감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짜 프로젝트는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한 신기술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무 난이도가 높아 프로젝트 스폰서의 기대 수준을 맞추기도 힘듭니다. 이런 프로젝트에서 멘털이 무너지면 정말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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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삼성 SDS에서 30년동안 경험하고 체득한 교훈을 정리한 <슬기로운 PM 생활>을 25년 1월 출간한 소식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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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3일 오후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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