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늦은 밤에 만난 지인이 매우 피곤해 보이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는 회사 행사 참석차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그렇다고 했다. 사실 행사에서 그는 별다른 역할이 없었다. 그저 주요 외빈이 자리를 일찍 비우면 자리를 채우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나는 그에게 “새벽에 일어나느라 힘들었겠다”라며 위로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렇지는 않았다”라는 거였다. 전날 밤 그의 아내가 했던 말 한마디 덕분이라고 했다.


애당초 그는 행사에 가기 싫어 아내에게 투덜댔다고 한다. “내가 없어도 되는 행사야.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니 스트레스받아. 짜증도 나고.” 그러자 그의 아내가 그에게 타박을 주더라고 했다. “그냥 감사하게 생각하고 나가. 월급도 주고, 일자리도 주고, 덕분에 우리 가족이 별 탈 없이 살잖아.”


생각해보니 아내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래. 이왕 갈 거면 감사한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 행사에 가자’라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새벽에 일어나는 게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도 늙은 거지. 한때는 반골로 통했는데, 회사 생활을 23년 하다 보니, 이젠 회사가 고마워져”라며 웃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지인이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왜 감사한 마음이 들면 아침에 일어나는 게 쉬워지는 걸까?”


나는 그에게 “그게 바로 감사의 힘이지”라고 답했다. 우리가 ‘의지력(willpower)’에 의존해 새벽 5시에 일어나려면 쉽지 않다. 자명종이 울리는 순간, 더 자고 싶은 욕망과 싸워야 한다. 그 욕망을 이겨내야, 우리는 침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나 ‘감사’는 다르다. 자명종이 울리는 순간, 별다른 노력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든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게 한다. 덕분에 지인은 더 자고 싶은 욕망과 억지로 싸울 필요가 없었던 거였다.


도대체 왜 감사에는 그 같은 힘이 있는 것일까?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교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데스티노 교수가 쓴 책 <Emotional Success: The Power of Gratitude, Compassion, and Pride(감정적 성공: 감사와 공감, 자부심의 힘)>이라는 책에는 그 이유가 설명이 돼 있다.


우리는 감사의 마음이 들면 누군가를 자발적으로 돕게 된다. 우리를 직접 도운 사람뿐만 아니라, 제3자까지도 돕게 된다. 우리 마음이 감사로 충만하면 남만 돕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 구체적으로 ‘미래의 나’를 돕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의 나’는 침대에서 더 자고 싶다. 그게 득이다. 그러나 ‘미래의 나’는 다르다. 회사 행사에 참석하는 게 득이다. 괜히 회사 행사에 불참해 높은 사람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 필요는 없다. 감사는 내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세움으로써 ‘미래의 나’를 돕는 역할을 한다.


감사의 이 같은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감사를 느끼면 당장의 이익을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데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내가 어려움에 빠져 허우적 될 때 친구로부터 전혀 예상치 않은 도움을 받아 깊은 감사를 느꼈다고 해보자. 나중에 친구가 어려움에 빠질 때 진심으로 그를 돕게 된다.


대신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것은 자발적으로 포기하게 된다. 예를 들어 휴가를 아예 가지 않거나 미루게 된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즐길 시간쯤은 간단히 포기하게 된다. 그 대신 친구를 도움으로써 친구와 관계가 좋아진다. ‘어려운 처지의 친구를 돕는 좋은 사람’이란 평판도 얻게 된다.


덕분에 불확실하다고 해도 미래에 이득을 볼 가능성은 높아진다. 다시 말해 감사를 느끼면 우리 마음은 현재의 이익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게 된다. 대신 미래 이익에 더 높은 가치를 두게 된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은 ‘달콤한 잠’이라는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다. 대신 ‘안전한 회사 생활’이라는 미래 이익을 얻게 된다. 이처럼 감사는 우리 마음에서 경쟁하는 두 가치, 당장의 이익과 미래 이익 사이에서 무게 추를 미래로 옮겨 놓는다.


그 결과 ‘미래의 나’가 도움을 받는다는 게 데스티노 교수의 통찰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의 삶에서 더 자주 더 깊이 감사를 느낄수록 미래의 성공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데스티노 교수의 책에는 이를 입증하는 몇몇 연구 결과가 소개돼 있다. 실험 참여자에게 현재 얼마를 받으면 1년 뒤 100달러를 포기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 실험이 대표적이다. 참가자들은 평균 17달러를 받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감사함을 느낀 옛 경험을 회상했던 참가자들은 달랐다. 31달러는 받아야 미래 100 달러를 포기할 수 있다고 답했다. 잠깐 동안 감사했던 경험을 머릿속에 떠올린 것만으로도 1년 뒤 100달러의 현재 가치가 17달러에서 31달러로 거의 두 배 뛰어 오른 셈이다. 이처럼 감사는 미래 이익의 가치를 높이는 구실을 한다.


이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도 많다. UC 버클리의 심리학자 제프리 프로(Jeffrey Froh)의 서베이 결과도 그중 하나다. 학생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학점, 감사의 수준, 우울증, 물질주의, 삶의 만족도 등에 대해 서베이를 했다.


그 결과, 삶에서 더 자주 감사를 느끼는 학생들은 학점이 더 높았다. 학업 목표를 추구하면서 기쁨을 더 자주 느꼈다. 인간관계도 더 좋았다. 친구나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 더 큰 기쁨을 경험했다. 우울감이나 질투심도 덜 느꼈다.


데스티노 교수는 감사의 이 같은 효과를 설명하면서 감사와 의지력의 차이를 특히 강조했다. 우리가 의지력을 활용해 당장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눈앞에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때, 의지력을 동원해 먹지 않고 참기란 어렵다. 억지로 노력을 동원해야 한다.


그러나 감사는 그렇지 않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가능하다. 이는 감사의 속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감사를 느끼면 우리는 저절로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낸다. 자발적으로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게 된다. 억지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공을 원한다면 의지력보다는 감사가 더 절실히 필요할 것만 같다.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감사를 느끼면 `미래의 나`를 돕게 된다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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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7일 오후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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