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의 인문학 리더십] 다 같이 행복하자
공감신문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가요? 아니면 도움을 받은 사람이 더 행복한가요?” 강연을 나가서 이 질문을 하면 꼭 다른 답변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둘 다요!” 사실 양비론 양시론을 말하는 사람이 제일 싫다.
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매사에 판단이 너무 극단적인 사람도 문제가 있지만, 매사가 다 옳고 다 그르다는 사람도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다.
정답은 “도와준 사람이 도움을 받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이다. 왜 그럴까? 증명을 해보자. 자신이 도와준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더 기쁘게 된다. 자신의 능력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반대로 도움을 받은 사람도 문제가 해결되어서 기쁘다. 그러나 늘 남에게 신세만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도와준 사람보다 더 행복하기가 힘들다.
“도와준 사람이 더 행복해요!” 강의에서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정말 착한 사람이다. 강사를 도와줘서 강의 분위기가 잘 이어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어서 또 묻는다. “그러면 누가 먼저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까요?” ”도움을 준 사람요!”라고 합창으로 돌아온다. “다들 그렇게 하고 계시죠?” 답이 없다. 일부 머쓱한 웃음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 평범한 진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다 알면서 왜 실천하지 않는 걸까?
주변에서 이런 얘기 들어 봤는가? “나는 죽어라 시간 내서 도와줬더니 ‘고맙다’는 소리 한 마디 없더라. 그런 얘기 들으려고 도와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그땐 솔직히 참 섭섭하더라. 그래서 그 다음부터 그 친구는 안 봐!”
무엇을 대가로 바라고 도와준 것은 아니란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맞는 수순은 섭섭해하긴 커녕 먼저 고맙다고 말해야 했다. 남한테 도움을 주면 자기가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맞다. 그러면 그에 걸맞은 표현을 하는 것이 이치다. 실컷 도와주고 인간관계마저 끊기는 것만큼은 정말 피할 일이다.
어떤 사람이 말을 잘하는 사람일까? 남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 아니면 청산유수같이 말을 술술 뱉는 사람? 어떤 사람하고 말을 해보면 정말 모르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 챗GPT인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어떤 주제가 나와도 거뜬히 다 소화한다. 대화를 해보면 그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것처럼 느껴질 때, 듣는 사람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반면에 어떤 사람하고 말해보면, 대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 주니까, 그 사람한테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게 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최고의 대화 선수다.
경청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초등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귀를 쫑긋하고 듣는다.”라고 답한다. 그래서 “무엇을 듣느냐?”고 물어보면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다 듣는단다. 근데 이건 경청이 아니다.
경청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말을 할 때는 그 말을 하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 말을 들으면서 “지금 이 순간 이 사람이 이 얘기를 나한테 왜 하고 있을까?” 곰곰히 생각하라. 듣는 사람의 생각이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주파수가 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 100% 경청이 이뤄진다.
들으면서 그냥 가만히 있지 말고, 고개를 끄덕인다든지 하면서 맞장구도 쳐줘라. 이것은 노래할 때 반주가 필요한 것과 동일한 이치다. “참 힘들었겠네. 오오 잘도 넘어갔네.” 등과 같이 말해주라. 그러면 여러분은 소통의 달인이 되는 거다.
나는 개그 프로그램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한때는 개그맨처럼 남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철학자가 개그맨이 되기를 원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철학이 없는 개그맨은 그저 순간순간 웃음을 파는 장사꾼에 불과하다.
그래서 개그맨이 철학까지 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제는 개그맨이 되기는 틀렸고, 강연장에서 웃음을 선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사람을 웃기는 데는 3가지 방법이 있다.
1️⃣자기 자신을 낮추면 된다. 사람들이 웃을 때는 상대방에 대한 우월감이 느껴질 때다. 자기 자랑을 정말 진지하게 하는 사람은 남을 못 웃긴다. 자신이 열등감을 느낄 때는 웃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화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2️⃣반전이 있는 스토리에 사람들은 웃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엉뚱한 결말이 나오면 깜짝 놀라서 기가 막힌다. 속았다는 기분이 들 때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는다.
3️⃣마지막으로, 뭐든지 과장스럽게 행동하거나 말하면 사람들은 웃는다. 그냥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부조리한 상황에 인간은 웃음으로 대처한다.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남을 비하하면서 웃기려고 하면 오래 못 간다. 순간적으로 사람들이 웃기는 하지만,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다른 사람을 희생양 삼아서 웃고 있지만, 언제 그 칼날이 나한테 향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불안하다. 실제로 그런 사람은 멀리 하는 것이 좋다.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행복한 사람이 웃는가? 웃는 사람이 행복한가?” “행복한 사람이 웃는다”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잘 웃지 못한다. 왜 그럴까?
세상에 행복할 일이 널려있을 리가 없다. 이런 학생이 웃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웃는 사람이 행복하다. 무조건 자주 웃어라. 웃으면 엔도르핀이 돈다. 즐거워진다. 웃음치료라는 것도 결국 이 원리에 기초한 것이다. 자꾸 자주 웃다 보면 행복해진다.
슬픈 일이 있어도, 지루하더라도, 힘든 상황이라도 자꾸 웃어라. 남 보기에 실성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않으면 공개적인 장소에서도 자주 웃는 것이 좋다. 혼자 있을 때도 물론 자주 웃어라. “행동이 생각을 지배한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의 말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돼라.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돼라. 무엇보다도 남과 같이 잘 웃는 사람이 돼라.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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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4일 오후 12:19